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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3일 /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제1독서 : 탈출 14,21―15,1ㄴ / 복음 : 마태 12,46-50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은 상식적으로 어머님과 형제들에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설교 마치고 갈께요.’라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밖에 계신 분이 내 어머님과 형제들이 아니라 여기 계신 분들이 내 어머님이고, 형제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요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루카 복음에서 부모님이 예수님을 찾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부모님이 소년 예수님을 사흘이나 걸려, 실신 지경으로 힘들게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힘들게 당신을 찾아온 부모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으시고, 무안하게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오늘 복음과 루카 복음 모두 자식된 도리로서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일상의 도리에서 어긋나는 말씀을 하신 건가요?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십계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예수님께서는 그러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시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가족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보다도 하느님의 뜻이 더 중요함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가까이에서 가족보다 하느님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한 분들이 계십니다.

한 수사님은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하느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수도원에 입회합니다. 가족보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는 것이 속상하지만, 하느님을 생각하며 감수한 것입니다.

 

주일 미사를 가야하는데, 여가 생활이 중요하고,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친교를 이루고,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구원으로 가는 길은 넓고 크다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늘 좁은길을 이야기 하십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가족, 동료, 친구, 아끼는 물건, 취미생활, 돈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중에서 대부분이 가족을 선택하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의 소중함이 가족으로 표현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데에 마음을 두었으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