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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강론을 늘 어렵게 준비하기에, 한 선배 수사님께서 제게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본인은 전 총장 신부님께 월요일이면 강론 원고를 보내고, 피드백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피드백은 형제! 오늘 강론은 책상에서 쓴 것 같아. 강론은 성체 앞에서 쓰도록 하게저 역시 책상에서 쓸 때가 많은데, 어제는 양심상 책상에서만 쓸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의 힘을 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기에, 예수님의 현존을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성체 앞에서 쓰라는 의미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체의 의미가 오늘 복음 안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겠다고 하십니다. 성체를 모시는 사람 안에 당신께서는 함께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 안에 당신께서 현존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 대한 공경의 의미를 예화를 통해 보겠습니다. 미국 가톨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풀턴 쉰(Fulton J. Sheen) 대주교는 그의 모든 피정과 강론에서 매일 성체조배의 시간을 가질 것을 진심으로 권고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게 이러한 영감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어느 소녀였습니다. 때는 공산주의가 중국을 완전히 점령했을 때였습니다. 한 무리의 공산당원들이 한 성당에 들어가 사제를 연금하면서 사제관은 말 그대로 '사제의 감옥'이 되었습니다. 공산당원들은 성전에 들어가 감실을 부수고 성체를 바닥에 던지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때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던 어린 소녀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작아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날 밤 소녀는 땅에 엎드려, 사제관을 감시하는 경비병 앞을 기어서 어두운 성전으로 다시 들어 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한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조배를 드린 다음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루에 한 번, 입으로만 성체를 영할 수 있었기에 소녀는 바닥에 몸을 굽혀 혀로 예수님을 받아 모셨습니다.

 

사제관에 감금되어 있던 사제는 창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사제는 자신이 직접 세어서 축성했으므로 감실 안에 몇 개의 성체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36일째 되는 밤, 마지막 성체를 영한 어린 소녀는 성전을 떠나다가 그만 경비병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경비병은 소녀를 묶어놓고 때려 비참하게 죽였습니다. 그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본당사제는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풀턴 쉰 대주교도 어느 세미나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는, 평생 매일 한 시간 동안 성체께 흠숭을 바치겠다고 하느님께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82세의 나이로 선종할 때까지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대주교의 이러한 모습은 수많은 다른 사제들과 신자들에게도 성체께 흠숭을 바치도록 영향을 주었습니다.

 

풀턴 쉰 대주교는 성체께 대한 공경의 실천으로 한 시간 동안 성체조배를 했다고 하십니다. 그분의 신앙을 보면 반성이 됩니다. 늘 바쁘게 지내고, 일이 많다는 핑계로 성체 앞에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 보내는 시간은 일생 중 가장 귀중하고 유일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체조배로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고, 성체성사로 참된 양식으로 참된 음료로 오시는 예수님과 일치합니다. 예수님과 일치하는 성체성사에 정성과 공경의 마음을 다하고자 합니다. 갈라티아 220절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말씀처럼 성체를 통해 이제는 내가 아니라, 문자가 아닌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심을 깊이 깨달아야 겠습니다. 아멘.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