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8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마태 23, 23-26)

 

찬미 예수님!

 

오늘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교회 역사상 토마스 아퀴나스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학자로서 우리 그리스도교의 신학을 정립한 위대한 교부로 일컬어집니다. 그는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수호하고자 일생을 바쳤고, 수많은 저서로 지금까지도 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의 일생은 방탕한 젊은 시절과 마니교에 심취, 그리고 암브로시오 주교를 만나서 회개하는 과정까지 한편의 영화처럼 극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어제 축일이었던 어머니 모니카의 헌신까지 그의 삶은 인간의 희노애락과 회개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특별히 연구하여 그리스도교의 은총론을 완성했다고 교회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상을 조금 소개해 드릴까합니다. 그의 사상은 방법론적 차원에서 이성신앙이라는 두 용어 안에 모아집니다. 마니교에 현혹되었을 시에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앙을 배척하였으나, 가톨릭 교회로 돌아온 후 이성과 신앙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인간이 진리에 이르는 길은 신앙의 권위이성이라는 두 길이 있다는 것이며, 그는 믿지 않고 깨닫기를 원하는 이에게 깨닫기 위해 믿어라.”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깨닫는 것은 믿음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원칙과 방법론을 역설하기 위하여 [신앙의 유익함]을 저술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신앙은 철학자를 포함해 모든 이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은 치유하는 약이며 방어하는 보루이고, ‘날기 위해 깃을 접어 두는 둥지이며,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 근본적인 진리를 신속하고 쉽게 깨닫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그는 이성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는 믿기 위해 깨달아라.”라고 말합니다. 이성적인 사고 없이는 올바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믿어야 할지 먼저 생각하지 않고서 그냥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하며 이성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 지를 제시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신앙과 이성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믿기 위해 깨달아라. 깨닫기 위해 믿어라.”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에 근거하여 성 안셀모는 나는 깨닫기 위해서 믿는다.”라고 하였고, 이는 스콜라 신학의 기본 원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은총론은 인간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을 믿어라.”라는 정식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또 의지로 노력할 때는 은총이 없는 것처럼 노력을 다하라.”라는 것으로 은총과 자유의지의 보완을 얘기합니다. 우리 신앙 안에서 은총과 자유의지의 관계를 이렇게 멋지게 설파해준 아우구스티노의 사상은 그의 삼위일체론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시로써 표현됩니다.

 

힘 자라는 데까지

임께서 주신 힘 자라는 데까지

임을 두고 저는 물었습니다.

믿는 바를 이치로 알고 싶어서

따지고 따지느라 애썼습니다.

임이시여 저의 하느님이시여

제게는 둘도 없는 희망이시여

제 간청을 들어주소서.

임을 두고 묻는데 지치지 않게 하소서.

임의 모습 찾고자 늘 몸달게 하소서.

임을 두고 물을 힘을 주소서.

임을 알아뵙게 하신 임이옵기에

갈수록 더욱 알아뵙게 되리라는

희망을 주신 임이옵기에

 

임 앞에 제 강함이 있사오니

임 앞에 제 약함이 있사오니

강함은 지켜 주소서.

약함은 거들어 주소서.

임 앞에 제 앎이 있사오니

임 앞에 제 모름이 있사오니

임께서 열어주신 곳에

제가 들어가거든 맞아 주소서.

임께서 닫아 거신 곳에

제가 두드리거든 열어 주소서.

임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임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임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염원을 제 안에 키워 주소서.

임께서 저를 고쳐 놓으실 때까지

고쳐서 완성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