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또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바로 오늘 수도자들을 기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부모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하였다고 나옵니다. 레위기 122절 말씀에 따라 율법은 여자가 아기를 배어 사내아이를 낳았을 경우,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된다.”고 규정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복되신 어머니, 영원한 동정녀이신 마리아는, 당신이 낳으신 아드님과 마찬가지로 모든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신 분이십니다. 아이를 낳은 여인은 부정한 몸이 되었으므로,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자기가 낳은 자식과 함께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바쳐야만 깨끗해진다고 율법은 말합니다. 그러니 율법이 남자의 씨를 받지 않은 처녀 몸으로 아이를 낳은 여인은 부정하다고 보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가 낳은 아이도 물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신성 안에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구원자 주님께서는 사람으로 오셨을 때 기꺼이 당신을 율법의 지배 아래 두셨습니다. 또한, 율법 위에 계시는 특별한 권한을 지닌 복되신 어머니께서도 우리에게 겸손의 모범을 보이시고자, 율법 규정을 따르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주님 봉헌 축일을 맞아 봉헌의 의미를 상고하고자 합니다. 봉헌이란 일반적으로 인간이 신에게 무엇을 바치는 종교적 행위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신의 마음에 들고 신은 그에게 어떤 혜택을 줍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과 신 사이에 일종의 거래가 성립됩니다. 신에게 먼저 무엇을 바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신으로부터 받아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봉헌은 우리가 마치 어떤 힘 있는 사람으로부터 혜택을 받아내기 위해 취하는 행동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봉헌은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의 거래가 아닌, 감사의 행위입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바칠 때, 어떤 이기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참된 봉헌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것, 그래서 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주셔서 가지고 있을 뿐이고, 하느님이 원하실 때는 언제고 돌려 드려야 할 뿐입니다. 그러니 봉헌이라는 의미는 자기 것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소유를 인정하고 그것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 드린다.”고 해석해야 맞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을 원래부터 계셨던 하느님 아버지 집에 다시 모셔다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저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오늘은 제가 수도회에 입회한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 10년간 하느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의 봉헌생활은 내 인생이 원래부터가 하느님의 것이니만큼, 하느님 원하시는 대로 쓰시도록 당신 손에 돌려 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봉헌은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깊이 깨닫는데서 나오는 자연스럽고 겸손한 행위가 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겸손한 마음으로 정결례를 거행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그 겸손한 마음을 본받아 봉헌생활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