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부르셨습니다. 열두 제자의 열둘은 거룩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하고, 시원적이고 종말론적인 형태를 취한다고 주석서는 밝힙니다. 또한 주석서는 열두 제자는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에 의해 세워진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대표하며, 새로운 백성은 새 이스라엘을 지칭하고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열두 제자가 사도라고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과 함께지냈던 예수님의 목격 증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선택하시어 당신과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뽑으신 목적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한다는 즉 현존의식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은 사도 사명의 기초가 되는 것이며 예수님과 밀접한 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음에도 사도라고 불리는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현존의식이 뚜렷하였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환시를 경험하고 사도가 되어 그리스도교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깁니다. 이 모든 것이 바오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오늘 1독서에 등장하는 다윗이 의로울 수 있었던 이유도 역시 하느님께서 친히 역사하고 계심을 다윗이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불의한 짓을 저지를 수가 없었습니다.

 

열두 사도의 열둘이라는 숫자는 미래의 공동체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미래의 공동체에 대한 표징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들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 대한 현존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열두 제자들을 당신의 사도로 부르신 것처럼, 우리 역시 완벽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세상에 현재화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