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차 1029일 목요일 맑음 순례기 마침

 

어제 어느 정도 공동짐을 정리해 놓았다. 오늘 까르까손을 떠나 파리외방선교회 기숙사로 돌아가는 일정이기 때문이다. 거의 순례는 마치고 파리로 돌아가 귀국길에 오르기 전에 약간의 시내관광(에펠탑, 파리야경 등)을 하는 일정을 거쳐 1031일 귀국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인 것이다.

 

아침을 준비하면서 남아 있는 부식의 모든 재료를 다 넣고 해물죽을 끓이니 이것이 해물죽인지 개죽(?)인지 모르는 잡탕이 되었다. 그래도 많은 양의 죽이었건만 모두가 맛있게 먹다보니 큰솥의 죽을 다 먹고 말았다. 레몬즙까지 뿌렸으니 그 향기가 또한 일품죽이었다.

 

남은 감자도 삶고 계란도 삶아서 밥통에 넣어 짐을 정리하고 나니, 주인아주머니께서 퇴실 정산을 위해 오셨다. 34일 머물렀던 숙소대금으로 저렴한 가격 500유로를 드리고 편안하게 잘 지냈다고 감사인사를 드렸다. 청소하고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환기시키고 나니 원래의 깨끗한 집이 되었다.

 

이 집을 처음 들어 왔을 때 인상적으로 느낀 것이 각방의 디자인이 다 달랐던 것이다. 빨간색(딸기), 오랜지색(오렌지), 파란색(사과), 미색(바나나) 등의 조화로움이 방에 걸려있는 수건 조차 색상을 맞추어서 배치를 해놓았던 것이다. 아마도 새로 리모델링한지 얼마 안된 듯 싶었다. 혹시나 다음에 다시 까르까손을 찾아오게 된다면 이곳을 또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후 5시가 되어서 파리외방선교회 기숙사에 도착하였다.

이번에 주차하는 데는 또 다시 사고가 나지를 않기 바라며 대문을 통과하는 동안 내가 내려서 오보스꼬 수사님 운전하는 것을 인도해 주었다. 좌측으로 핸들 돌리고 좌측길로 바짝 붙였다가, 이제 우측으로 완전히 핸들 꺾어서 들어가요... 하면서 안내를 하니 이번에는 별탈없이 한번에 좁은 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적어도 내가 대형면허 소유자 아니던가~)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는 오보스꼬 수사님을 위해 우리 모두 축하의 박수를 쳐주니 지난번 첫날의 아픈 상처가 다 치유되는 기분들이었다.

 

우리 수도회 창설 62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빨랑카(물적 사랑의 선물)를 후배 수사님들에게 주고자 하여 우리 셋은 모여서 자기 용돈을 각출하여 모아서 격려의 편지글과 함께 봉투에 담았다.(저녁식사때 축하케이크를 자르며 전달)

 

최안드레아 수사님의 주례로 순례를 잘 마친 것에 대한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평화인사 때는 서로가 서로를 포옹하며 형제애를 나누었다. 고마웠다고... 감사하다고...

목마른 자는 물 있는데로 가거라.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를 찾으라’(성무일도서 대림2주일 아침기도 시편2후렴)

이번의 순례가 바로 그렇게 주님의 자비를 만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 자기의 소임지에서 어제와 같이 또 내일도 그렇게 걸어가야 하는 일상의 순례자가 되어 걸어가야 할 것이다.

특히나 우리 셋의 나이들은 환갑들이 지났으니(나만 낼 모래?) 젊은이와 같은 길이 아니라 늙음의 준비도 해야 할 듯 싶다.

 

어느새 내 나이도 조만간 환갑을 맞이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즈음에(20살에 수도원에 입회하여 철없이 수도생활을 한지 만 39년이 되는 내일-10월30일) 더 늙어서 정신이 흐릿하기 전에 미래를 준비야 할 듯 싶다.

 

아름다운 죽음은 없고 오로지 주님의 은총에 기대할 뿐이지만, 아름다운 노년만큼은 지금에서 부터라도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면 어느 정도 추하지는(?) 않을 듯 싶다는 생각이들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함께 본원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연로수사님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곧 그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것이 뻔하기에 타산지석의 마음으로 앞으로의 생활태도를 훈련하다보면 좋은 것은 배워가고 나쁜 것은 미리 생활태도를 바꾸어 가는 처신을 하면 어떨까 싶어서 여기에 각오를 적어본다.

 

1. 치매예방을 위해 영어문장 암기 또는 고사성어를 암기하자.

2. 대화주제를 20~30년전 이야기는 하지 말고, 젊은 날의 영웅담도 침묵하고, 독서를 통하여 새로운 경험과 지혜를 배워 나가자.(끊임없이 쇄신-스티븐 코비)

3. 자신의 건강과 병에 대한 이야기를 줄이고 그 불편함을 순교정신과 침묵대월로 승화하는 노력을 하자.

4. 실내거동에 있어서 가벼운 운동화를 마련하여 신발을 끌고 다니지 말자.

5. 늙으면 몸에서 냄새가 나기에 샤워를 자주하고 세탁(오래된 옷은 아낌없이 버리자)과 방청소를 자주하여 청결유지에 신경을 쓰고 화장품 또는 향수를 사용하여서라도 몸에서 나는 악취를 예방하자.

6. 매일의 죽음을 묵상하여 방과 세면장을 청결하게 하고 간소한 생활을 유지하자.(방에서 나갈 때마다 하나씩 들고 나가 무소유를 유지하기-법정 스님)

7. 쉽게 남을 판단하며 탓을 하지 말고 옹졸한 고집 버리고, 너그러운 마음의 경청을 유지하자.

8. 늙으면 기억력이 떨어지고 난청이 되기에, 겸손되이 그 약함을 받아들이고 젊은 형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9. 지니고 있는 용돈을 기회 있을 때마다 솔선하여 어린 형제들을 위해 또는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를 위해 지출하자.(적립하지 말 것)

10. 정해진 시간에 단순노동(국화모종가꾸기, 정원관리)과 관상기도, 산책, 수영, 악기연주(클라리넷)로 영육의 건강함을 유지하며, 그럼에도 남은 힘이 있을 때 집안청소를 하는 등의 내가 머물고 있는 공동체의 형제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유지하고, 과식을 피하고 점차 식사량과 횟수를 줄여가 몸을 가볍게 하자.

11. 진정 나 자신의 노환이 왔다 싶을 땐 금식을 하며 남은 생을 불사르고 떠나자.(글세... 잘 될려는지...?)

12. 지금에라도 그 누군가가 내 인생의 목적으로 무엇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느냐고 묻는다면, ‘성령과 일치하는 은총을 구하여 하늘의 신비를 깨닫고, 그 안에서 수도공동체의 안녕과 발전에 내 삶을 바치고자 살아왔지요라고 답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리라.

13. 맑은 정신과 가벼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절주하기로 한다.(이것도 지키기가 참 힘들 듯...)

14. 되도록 외출을 줄이고, 3분 이상을 주님께로 향한 마음을 놓치지 않도록(성녀 소화 데레사) 노력하고 성령의 은총을 구하자. 또한 일상에서 숲속의 빈터(은총을 받는 고요한 빈곳-무념무상)로 나아가자.(마르틴 하이데커)

15. 세계의 의미는 반드시 이 세계 밖에 있어야 하듯이(비트겐슈타인), 우주관을 가지고 오늘을 걸어가다가 그 어느 날 하늘의 부름이 있을 때 하느님 영의 나라로 날아가자.

16. 동경(憧憬)하는 매일의 나날이 되기를...(토마스 안셀름 신부)

그리고 ..... (앞으로 더욱 묵상하여 보충시켜 나아가야 할 듯)

 

틈날 때 마다 읽으려고 가져간 책,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라는 책(도서출판 리수, 2004, 오경순 옮김)을 읽으며 많은 도움과 묵상을 하게 되었다.

 

노랫말이 너무 좋아서 여기에 바위위의 목동가사를 옮겨본다.

(요즈음 매일 클라리넷으로 연습하고 있으며, 언젠가 소프라노와 피아노와 함께 연주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바위위의 목동(소프라노와 클라리넷 그리고 피아노를 위한 곡)

프란츠 슈베르트 작곡(182810), 빌헬름 뮐러 작시

 

높은 언덕에 올라서서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며 나는 노래한다.

 

깊고 어두운 계곡 먼 곳으로부터

협곡의 메아리가 위로 솟아오른다.

 

나의 목소리가 더 멀리 퍼지면,

저 아래로부터 더욱 명확하게 되돌아온다.

 

나의 사랑은 저 멀리 머물러 있어서

나는 더욱 열정적으로 그 사랑을 원한다.

 

가슴 깊이 들어 있는 나의 고뇌로,

나에게 기쁨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희망은 내게서 떠났다.

나는 여기서 매우 외롭구나.

숲속의 노래는 동경하듯 울리고

밤 동안 그것은 갈망하듯 들린다.

황홀한 힘에 의해 마음이 하늘로 이끌어진다.

 

봄이 온다

,

나의 기쁨이여,

이제 나는 여행을 준비할 것이다.“

 

그렇다!

이제 다시 일상의 순례가 시작되어 여행을 떠나야 할 것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순례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두 수사님 모시고 젊은 도움의 세분 수사님들과

2주간의 프랑스 성지순례를 마쳤습니다.

지나온 시간동안 섬김의 자세로 지냈듯이

앞으로의 나날에도 참회와 보속의 의미로

침묵하며 모든 형제들을 섬길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1031일 오후에 프랑스 파리를 이륙하여 시차 일자변경으로 111일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수도원 내방에 들어왔다.

 

자~~~이제 짐을 풀자..... 또 다른 일상의 순례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