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기에르 [Bruguiere, Barthelemy]

 

Bruguiere, Barthelemy(1792~1835). 파리 외방전교회원.

 

초대 조선교구장. 주교. 한국성은 소(). 1792212일 프랑스의 레사크(Reissac) 지방에서 태어나, 카르카손(Carcassone) 신학교에 들어가, 1815121일에 신품을 받고, 모교에서 10년간 신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182533세의 나이로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갔으며, 이듬해에 태국으로 건너가, 그 곳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중 18295월에 보좌주교로 선정되었다.

바로 이때에 자발적으로 창설된 조선 교회로부터 성직자 파견을 요청받은 로마 교황청은, 파리 외방전교회와 논의하는 가운데, 254대 교황으로 즉위한 그레고리오(Gregorius) 16세가 183199일에 두 가지 교서(敎書)를 통해, 조선 교회를 북경교구로부터 분리하여 새로이 독립된 대목구(代牧區)를 창설하는 한편, 초대 감목으로, 조선 전교를 자청한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하였다.

이로써 조선 교회는 창설 46년만에 북경교구에서 독립되어 고유한 조직을 갖춘 교구로 발전하게 되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교황청의 이러한 결정을 알게 된 것은 1832725일 이후의 일이었는데, 그는 1831년에 이미 조선입국을 위한 장도에 올라 마카오에 와 있었다.

 

18321021일 교황청의 사령장을 받은 그는 더욱 마음이 급해져 조속한 조선입국을 위해 중국으로 들어가 갖은 고난과 질병을 극복하면서 중국대륙을 횡단하여 서만자(西灣子)까지 다다랐다. 그리하여 1019일에는 오늘의 열하성(熱河省)의 뻬리쿠(哵咧溝)라는 교우촌에 도착하였으나 20일에 갑자기 뇌일혈을 일으켜, 그리운 조선땅을 눈앞에 바라보며 선종하였다.

그 때 주교의 나이 43세였다. 조선을 향하여 페낭을 떠난 지 4년간, 오로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희망만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한 불요불굴의 굳은 신념의 소유자였던 브뤼기에르 주교는, 학문과 덕행이 높은 이상적인 성직자였다.

 

그의 개척한 길을 따라 곧 모방(Maubant, ) 신부와 샤스탕(Chastan, ) 신부 등이 조선입국에 성공함으로써 조선교회는 드디어 모든 조직을 갖춘 완전 독립된 교회로 성장할 수가 있었다.

서만자에서 때를 기다리던 모방 신부는 그가 선종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 달려가 1121일에 장례를 치러 그 곳에 묻었으나, 1931년 파리 외방전교회의 조선전교 100주년을 맞아 그 유해를 서울로 모시고 와 1015일 용산에 있는 성직자묘지에 묻으니, 승천한지 94년만에 평생에 그리던 조선땅에서 잠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