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차 1027일 화요일 맑음

 

깊고 편안한 잠에서 깨어 아침에 눈을 뜨니 피로감이 하나도 들지를 않게 몸이 가쁜하고 상쾌하다. 오늘은 무엇인가 좋은 일들이 일어 날 듯이 아침부터 마음을 설레게 하는 화창한 날이다.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박놀벨도 수사님 방에 들어가 건강에 대해 물어보니, 심장이 안좋다는 것이다. 걱정이 된다. 오늘 아침은 늦잠자며 편안히 각자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기에, 상추쌈에 계란후라이 만들어서 간단히 먹고 다시 침실로 올라와 한잠을 더 잤다.

 

한잠자고 다시 1층 홀에 내려가니 모두들 일어나 있었다. 김바로오 수사님은 나를 보더니, 점심식사를 칼국수 해 먹느냐고 묻는다. 나는 계획에 없었지만, 그래! 수제비를 요리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그럼 지금부터 양념을 준비해야했기에, 밀가루를 반죽하여 비닐봉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양파와 감자, 양송이, 표교버섯가루, 홍합과 새우등의 해물을 썰어 넣고는 남은 멸치로 기본 국을 끓여내니 제법 수제비 국물이 완성되었다. 이제 형제들 셋이서 반죽된 밀가루를 떼어 넣으니 맛있는 수제비가 되어 이제 끓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끓는 냄새가 좋으니 모두가 즐거운가 보다.

훌륭한 수제비 요리를 먹기 시작해 보니 양이 너무 많은 듯 했지만, 그 많은 것을 모두가 다 맛있게 먹어치우는데, 게눈 감추듯이 먹어댄다.

 

오후 2시에야 편안하게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이셨던 브르기에르 주교님의 세례성당과 생가를 방문하러 길을 나섰다.

브르기에르 주교님은 초대 조선교구장이셨으면서 정작 조선땅은 밟지도 못하시고 중국에서 뇌일혈로 43세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던 분이시고, 우리 조선교구의 미래를 위한 초석으로 교황청과 북경교구와 파리외방선교회 사이에서 빚어 질 갈등소지를 미리 차단하는 문서를 많이도 작성해 놓으신 분이시다. 아직 시성이 안되시어 안타까움이 들지만, 아마도 다음 기회에는 분명 시성되실 것이리라 예상해 본다.

 

멀지 않은 1시간 정도 운전해 성당에 도착하여 함께 그 작은 성당에서 성가도 우렁차게 부르며 미사를 드리고 동네에 있는 생가(일반인 소유)앞에서 기념찰영으로 맘을 달래며 5대 교구장님들의 발자취를 따른 순례를 감사로이 마침표 찍었다.

 

브르기에르 주교님의 세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독서와 응송까지는 제대로 바쳤는데, 복음낭독하려는 오보스꼬 수사님이 갑자기 오늘이 화요일인데 어제 복음뿐이네요하기에, 우리는 모두가 어제 주일미사 드렸잖아요하고 대답하였다. 순간 오늘의 요일에 대해 모두가 혼란스러워졌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야?

~ 맞다. 오늘이 화요일이었구나.

어제는 차만 타고 다니다 보니 우리 모두의 기억에 그 월요일 하루가 사라졌던 것이다. 참내~~~

 

뒤늦게 시청직원이 우리가 순례 온 것을 알고 시청 사무실로 우리를 초대를 하여 다과를 대접해 주신다. 내년 2016년이 병인박해 150주년이기에 아마도 한국에서 순례객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오실 듯싶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시청에서도 나름대로 준비를 하겠다고 하며 남부 특유의 정서와 맞게 정성스러움을 보여주신다. 다만 우리도 이들을 위한 선물을 미처 준비 못해 온 것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사실 프랑스에서 시골 중에서도 더 시골 깡촌(?)인 이곳에, 한국에서 순례객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방문오고(이미 성당안의 성모상 앞 작은 제대위에는 한복 입으신 성모자상이 모셔져 있었다) 하니 시청에서도 너무 놀라웠다는 것이다. 정작 자신들은 브르기에르 주교님이 누구신지도 몰랐었다고...

 

그곳을 나서는데 약20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지중해 바닷바람과 모래를 밟을 수 있다고 하여 우리는 방향을 바꾸어 바닷내음을 따라갔다. 잠시 뒤 흐린 날씨였지만, 지중해의 알싸하게 세찬 바람과 거친 파도를 바라보며 시원스럽게 소리도 질러보았다. ~~~ 지중해 바다 다!

 

나는 무엇인가 지중해에 왔다는 기념의 상징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어서 모래사장을 뒤지다가 파도에 떠밀려 온 조그만 십자모양의 나무 등걸을 발견하고 갈무리 해 두었다. 그  십자가 나무토막이 내가 프랑스 성지순례 동안에 남아 있는 상징적인 기념품 하나로 이제껏 방 창틀에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조만간 기억에 순교정신만 각인되고 나면 그 상징도 비우리라 생각하며...

 

지중해 바닷가 특산물이라는 굴과 소라와 포도주를 100유로에 구입하여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저녁밥을 지어 레몬즙을 뿌려 함께 먹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지난 시간마다의 에피소드들을 되 뇌이며 또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해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제 5대 교구장님의 생가를 다 방문하여 마침표를 찍었으니, 까르까손의 밤거리를 누비며 생맥주 한잔하자는 의견이 나와 젊은 수사님들 3명과 나는 숙소를 나섰다. 김바오로 수사님은 피로하여 일찍 쉬신다고 하고, 박놀벨도 수사님은 가슴(심장)이 답답하다 하여 집에서 쉬시기로 하였다.

 

집 주변의 조그만 호프집 길가 테이블에 앉아 500cc의 생맥주를 한잔씩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11시에야 귀가하였다.

이문세의 사랑이 저만치 가네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흐느적 흐느적 여유롭게 집으로 들어오는 까르까손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달도 참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