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차 1025일 주일 맑음

 

오늘로써 프랑스 성지순례 온지 1주일이 지난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벌써 순례의 반이 지나간 것이다. 긴장과 인내와 겸손을 배워 나가는 순례의 참모습으로 지나온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더욱 그 첫마음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말을 함에 있어서 조심해야겠다. 나부터 겸손하게 섬기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모두가 순탄하게 지내 수가 있을 것이리라. 내가 말을 함에 있어서 언중유골로 뼈있는 타박과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면, 모두가 서로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쏟아 내어 분열이 올 것이다. 작은 불씨에 기름을 붓듯이 말을 함에 있어서 상처를 주는 언사를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처음 파리에 도착하여 승합차에 대문 페인트가 묻은 것을 휴게실에 멈출 때마다 가지고 있는 주머니칼로 살살 긁어오다가 오늘에서 거의 다 붉은 페인트를 벗겨냈다. 아무리 자차보험을 들었다 해도 보기에 상처가 너무 흉해서 차를 볼 때마다 첫날 접촉사고의 트라우마가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었는데, 이제 그 모습을 없애서 맘이 좀 편안했다.

 

아침시간이 8시가 지나서도 집안이 조용하기에 오보스꼬 수사님께 물어보니, 어제부터 썸머타임이 풀려서 이제 시간이 7시라는 것이다. 1시간을 벌었다.

 

주일미사가 10시 반이라고 하여 나는 9시 반에 클라리넷을 가지고 성당에 가서 순교자의 믿음성가를 연습했다. 전주와 함께 연습을 잘하고 혹시나 청할지 모를 앵콜곡을 연습하려고 악보를 찾는 순간에, 계단에 받쳐 두었던 클라리넷이 밑으로 쓰러지면서 키를 다치고 말았다. ~~~ 이런 큰일이다. 소리가 안난다. 리드도 바꾸어 보고 별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내사랑 클라에서는 소리가 나지를 않는다. 큰 고장이 난 것이다. 이런 낭패가... 연습할 때 성당에는 일찍 오신 신자 4명 정도가 계셨을 뿐이었고, 연습하는 그 음색이 성당에 울리는 공명이 너무 좋아서 나 혼자서 조차 감동했건만... 이제 클라는 더 이상 아름다운 소리의 악기가 아니라 짐 가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급히 수사님들께 클라리넷 연주가 안된다고 알려주었더니 모두가 아쉬워한다. 조심스럽지 못한 나의 행동이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이제 무슨 낙으로 앞으로의 여행을 즐길 것인지 못내 쓸쓸한 마음뿐이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라 했건만...

 

할 수없이 이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으로 낙을 삼을 수밖에...아마도 주님께서 두형제보다 내가 클라 연주하여 나서게 되면 교만할까봐 이런 사고가 난 듯싶다. 더욱 겸손하라고. 맘을 침묵대월로 추슬러 본다. 나의 종신서원 상본 화두가 침묵대월인 것을.

 

점심은 간단히 빵으로 때우고 휴식을 취한 후, 성베르네 주교님 서거 150주년 기념 전시관으로 갔다.

이 본당에서 사목협력을 하고 있는 최대건 안드레아 수사님의 자상한 설명과 전시회 준비의 철저한 정성을 볼 수 있었다. ‘성베르네 길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길을 걷다보니, 이곳에서도 싼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통하는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어서 나는 그동안 그 길을 걷고자 꿈꾸었기에 이렇게나마 잠시 성 야고보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길가 기둥마다 성야고보의 상징인 조가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베르네 주교님께서 태어나시고 어릴 때 자란 생가 터를 방문하고 본성당의 제대 뒤편과 지하성당도 순례하였다. 옛 것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본성당의 강론대에도 올라가서 형제님들 모두에게 평화를 빕니다하고 외쳐보기도 하고, 주교님의 어머님께서 동방의 작고 작은나라 순교지로 떠난 아들 주교를 위해 항상 기도드리셨던 자리에도 앉아서 그 어머니의 전구하심도 빌었다.

전시공간에 모신 유해 앞에서 주모경을 함께 바치며 성 베르네 주교님이시여, 우리 수도회를 지켜 주소서!”하고 마음모아 기도드렸다.

 

오후 4시 반에 사제관 숙소에 들어와 삐걱거리는 고요함에 머물러 있는데, 갑자기 딩동~ 하며 차임벨이 울린다. 누구일까 하고 현관으로 내려가 보니 최대건 안드레아 수사님이 들어오면서, “그냥 눌러 봤어요한다. 아마도 평소에 고요한 동네에서 이국생활의 외로움을 느꼈는가 보다 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 잘 견뎌주기를 빌며 화살기도를 바쳤다.

 

저녁식사는 미사를 마치고 동네 마트에서 사온 돼지고기와 통조림으로 남은 김치캔 2개를 넣고 감자와 양파도 넣어서 고추장 풀어 김치찌개를 얼큰하게 끓이니, 이보다 진수성찬은 없는 듯 마음부터가 푸짐해 진다. 상추쌈과 와인을 곁들여서...

대화의 주제는 옛날 우리들의 지난 모습들과 겹쳐진 수도회의 옛이야기들이었다.

 

역시나 시간이 지나도 상처의 아픔은 지나갔더라도 기억은 남는가 보다.

개인들의 역사를 나누는데 30년 전 이야기, 40년 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데, 기억의 저편에 있었던 상황들이 바로 어제 일어난 일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만 그때에는 서로가 맘 상하고 아펏었는데, 지금 이야기하는 시간에는 웃을 수가 있으며, 남의 이야기하듯 재미있게 들을 수가 있었다.

 

에피소드: 30년 전 우리들이 종신서원 준비를 위한 피정을 하는데, 수원에 있는 예수회 말씀의집에서 1차 피정을 하고, 성북동 본원에 돌아왔지만, 아직 종신서원식 때 까지는 시간이 10여일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보니 예식의 주인공인 우리가 또 집안 행사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니 우리는 장상에게 요청하여 2차로 피정을 떠났던 것이다.

복자수녀님들이 계신 배론성지의 농가주택을 빌려 1주일간 자체피정을 하며 머물렀던 것이다.

그때가 1월 한겨울이었기에 눈이 너무 많이 왔었고 매우 추웠었다.

수녀님들이 해주신 저녁밥을 먹고 불빛하나 없는 어둔밤에 개울을 건너 농가주택의 숙소로 가는데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가다가 내가 넘어져서 보온병이 깨지고 말았다. 떠나기 전에 나는 박놀벨도 수사님보고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며 떠들었건만, 정작 내가 미끄러져서 일을 망치고 만 것이다.

이런 기억들을 박놀벨도 수사님이 오늘 재미있게 이야기를 꺼낸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고소했을까...

 

우리 수도회가 그당시 7명의 유기서원자가 없었다면 수도회 문을 닫을(?) 수 있는 위기의 상황이었다고 감히 술회를 하면서 각각의 성소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어려움을 겪고 종신서원을 하고서 제주도에 5명의 형제들이 모여서 우리 수도회의 미래에 대한 각자의 역할에 대해 다짐을 하는 시간도 가졌었다.

박놀벨도 수사님과 서베드로(현:환속형제)는 분원을, 최요한(현:환속형제)은 재정의 안정을, 양라파엘 신부와 나는 양성을 맡으며 수도회를 살려보자는 각오와 다짐을 하였었다.

 

그런 기억들을 젊은 두 수사님께 들려주니 모두 놀라워한다. 우리 수도회가 그렇게 어려운 시기가 있었느냐고...

 

이제 우리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세대는 가고, 위기의식을 느끼며 살아온 우리 구세대는 사라지고, 새로운 젊은 세대가 세상을 행해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 수도회가 성령의 바람을 타고 세상으로 펼쳐져 나아가기를 기도 드릴뿐이다.

우리의 잔소리와 노파심의 이야기는 침묵의 덕으로 남겨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밤에 오보스꼬 수사님은 같은 르망교구이지만 자신의 사목지인 본당을 다녀와야 한단다. 승용차로 3시간을 가야하는 먼 길인데... 자신의 사명감에 투철한 모습이 아름답게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