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생활의 근본정신, 점성, 침묵, 대월, 면형무아 우리 갈 데는 면형이다.”(강론 68.8.20)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에페 2,4-5)

 

교회는 지난 한 해 완전한 사랑반포 50주년을 맞아 축성생활의 해를 선포하고 모든 축성생활자들이 쇄신을 통한 자기 정체성 회복과 시대의 예언자적 사명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증거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올 해는 20153월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2주기를 맞아 교황께서는 교황청 새 복음화촉진평의회의 제안을 받아 들여 2016년 한 해를 자비의 희년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교황께서는 자비의 특별 희년 대사에 관한 서한에서 그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이 희년에 신자들이 온유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거의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계심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어 그들의 신앙이 깊어져 더욱 효과적으로 신앙을 증언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이가 하느님 아버지 자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아버지에 사랑의 힘으로 철저하고도 완전한 용서의 삶을 제안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올 한 해 저희 공동체의 구체적인 실천목표를 자비의 희년의 정신에 맞추어 공동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 두고자 합니다. 이 구체적인 생활목표는 우리가 9회기를 시작하면서 정해 놓은 5가지 중 마지막 것으로 한 회기의 마무리로 화해와 용서 그리고 일치를 통한 성소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우리 스스로 보속하는 삶을 통해 일상의 희생과 기도 안에서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이 먼저 우리들 안에서 체험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2016년은 9회기를 마무리하고 10회를 시작하는 총회가 있는 해입니다. 어느 회기보다 이번 총회는 수도회의 영성을 강화하는 총회로 준비하고자 합니다. 영성 강화를 통해 모든 형제들이 재 창립자로서 공동체에 허락된 은사, 즉 고유한 카리스마로 이해되는 공동체의 사명이 시대적 징표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그 일환으로 2016년 생활정신은 수도회의 근본정신인 점성, 침묵, 대월, 면형무아 우리 갈대는 면형이다.”라는 창설자의 가르침을 택했습니다. 우리가 정신으로 무장해야 할 이 말씀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마음에서 늘 넘치고 넘쳐야 합니다. 이 정신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될 때 우리의 목적인 면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정신은 결코 기억에 담아 두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 깊숙이 감추어 두는 것이 아닙니다. 실천함으로 항상 넘치고 넘쳐야 하는 우리의 일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행 될 때 우리는 재 창립자로서 창립자에게 허락 된 은사를 계승할 자격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유한 은사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증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립자가 가르치는 영성을 이해하는 과정 안에서 처음부터 카리스마가 갖는 자유로움이라는 본질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도생활에 있어 영성이 처음부터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하고 관계들 안에서 쇄신과 적응을 촉진함으로서 교회와 세상에 유익한 것으로 정향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성이 처음부터 궁극적 목적과 성격을 갖고, 교회와 세상에 유익한 것으로 정향 되어 있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영성 안에서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고, 쇄신과 적응을 촉진하는 성격들이 어떻게 영성을 드러내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창설자는 우리의 궁극적 목적에 관해서 간결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합일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창설자는 하느님과 합일이 되는 전 과정을 점성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침묵과 대월의 여정을 거쳐 면형에 이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수도생활의 수덕적인 차원을 완덕오계로 집약합니다. 창설자가 가르치는 영적 삶은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시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하느님을 모시는 바로 그 일, 다시 말하면 한 영혼과 일치를 유지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성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과의 합일에 있으며 하느님과의 합일을 면형이라는 실체적이고 상징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설자에게 있어서 하느님과의 합일은 실체와 상징으로서 면형입니다. 이 면형은 영성을 실현하는 방법으로서 영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카리스마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져야 하는 우리의 수덕적인 삶으로, 도달해야 하는 궁극적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 궁극적 목적 때문에 영성은 우리의 성소적 삶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성령의 요구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에게 영성적인 삶으로 매순간 낮아지고, 작아지고, 비워지는 삶을 통해 따름의 삶이 완성되어야 함을 알려 줍니다.

 

결국 우리의 삶이 하느님과의 합일로서 면형의 삶이되기 위해서는 점성, 침묵, 대월이라는 정신으로 철저히 깨어 있는 자로서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정신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수덕 적이고 신비적인 성격을 지닌 침묵과 대월, 실천적 성격을 지닌 점성 정신에 관한 창설자의 가르침에 보다 분명한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정신에 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하느님과의 합일로 실체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면형의 삶을 시대의 징표로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수도회의 영성은 고유성을 지닙니다.

수도회의 영성이 처음부터 고유성을 지닌다는 것은 부르심과 응답의 보편적 성소,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신원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성령의 선물로 허락된 카리스마적 성소, 한국순교복자회의 수도자로서 신원을 드러내고 그 사명을 분명히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카리스마적 영성의 기원이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지향과 사명은 끊임없이 우리의 신원을 알려주고 드러낸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영성의 고유성 때문에 신원은 구별되고 구체적인 지향과 사명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증거 하게 합니다. 선포와 증거자의 삶은 카리스마적 신원으로서 우리를 시대의 예언자적 삶으로 세상 한가운데 서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합니다. 만약 세상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우리는 보편적 성소인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카리스마적 성소인 수도자로서 삶을 스스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성적인 삶 안에서 고유성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응답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압니다.

 

둘째, 영성은 창조성을 지닙니다.

영성은 혼돈에서 질서로, 구속에서 자유로, 죽음에서 생명에로 옮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함으로 창조성을 지닙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 사람들이 혼돈과 구속과 죽음의 상태에 놓여 있었을 때 하느님께서 얼마나 강력하게 개입하셨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 그리고 모세와 많은 예언자들 심지어는 당신의 외아들에게 조차 혼돈과 구속 그리고 죽음을 그들에게서 치우지 않으시고, 선택한 이로 하여금 스스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계약을 통해 그들이 혼돈과 구속과 죽음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어떤 생활방식을 취해야 함을 제시하십니다. 이것은 영성이 혼돈과 구속과 죽음에 처한 우리들에게 서원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영성을 통해 혼돈에서 질서를 체험하라 하십니다. 구속에서 자유를 체험하라 하십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체험하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영성으로 우리의 정화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혼돈과 구속과 죽음을 체험하게 함으로 당신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결국 하느님은 영성적 삶 안에서 나에게 강력히 개입하시는 당신의 손길을 체험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원함이 우리를 늘 새롭게 합니다.

 

셋째, 영성은 유동성을 지닙니다.

영성이 유동성 갖는다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해 그 시대에, 그 사람, 그 장소에 맞게끔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힘, 즉 적응을 통한 변화를 이끈다는 점입니다. 이는 영성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로서 진보적인 진화를 계속해 나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진복적인 진화는 우리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듭니다. 제도 안에서 머물게 하지만 제도에 구속되지 않도록, 자유를 허락하지만 이 자유로움이 결코 제도를 밀어내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이 유동성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영성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 시대에 그 사람들에게 가장 잘 맞는 변화의 가능성으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성의 바탕에는 겸손과 온유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성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겸손과 온유가 없으면 영성은 제도화와 형식주의를 생산할 가능성이 큽니다. 영성이 제도화와 형식주의로 경직되고, 무기력하게 되면, 우리들의 성소적 차원인 위험한 기억들은 비성소적 차원인 안주하는 기억들로 변질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변화의 중심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변화의 중심에서 처음부터 따름의 위험한 기억들에서 주어지는 도전적인 삶이 두려움 때문에 안주하는 기억들로 위축되어서는 안 됩니다.

 

넷째는 영성은 또 다른 영성을 낳습니다.

영성은 수많은 성령의 열매를 낳게 합니다.(갈라 5,22: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그리고 이 열매들은 복음 선포를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열렬히 찾아 나서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갈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들이 독립된 각각의 개체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발전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유기체적 성격을 처음부터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바람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 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하나의 밀알이 썩은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영성적인 삶을 추구한다면서 어떤 인간적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무모한 것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싹이 돋도록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에서 충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를 한 가족으로 초대하고, 양육하고, 파견하는 이 공동체의 카리스마로 올 한해를 준비합시다. 무엇보다 창립자의 영성으로 철저히 준비함으로 재 창립자의 역할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합시다. 우리들 앞에 주어지는 새로운 시대가 위기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더라도 철저한 따름의 삶으로 이겨냅시다. 우리들의 순교자들이 불신과 좌절이 가득한 한 가운데를 믿음과 희망으로 헤쳐 나갔듯이 우리 또한 우리에게 닥칠 수많은 위기들을 믿음과 희망으로 헤쳐 나갑시다. 혹 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비켜간다 하더라도 믿음과 희망을 증거 함으로 썩어 없어질 한 알의 밀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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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Clerical Congregation of the Blessed Korean Marty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