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ve-2516641_960_720.jpg


귀한 ‘백년손님’에 감사하자



남편에게 장인, 친정아버지에게는 사위! 뭐 단순한 것 같기는 한데…!

그런데 예로부터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불렀으니, 남편은 백년손님(?)! 그렇다면 백년 내내 손님처럼 귀한 존재라는 말인데, 그런 백년손님에게 장인어른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백년손님을 지극정성으로 잘 맞이해 주는 분, 뭐 그렇게 생각하면 될 것인가. 그것도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둘의 관계가 그래서 그런지, 장인어른 때문에, 혹은 사위 때문에 상담 현장으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아니, 내가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걸까?).

‘백년손님’이라!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이지만, 우선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손님’이란 ‘손’의 높임말입니다. 또 ‘손’이란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이란 뜻이기에, 귀하게 맞이하는 사람을 높여 ‘손님’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손님을 백 년 동안 귀하게 맞이하려는 마음을 가지니, 우선적으로 귀한 대접을 서로 먼저 주고받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귀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그 귀함을 통해서 사위와 장인의 좋은 관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네요. 처음부터 서로를 귀하게 생각해 주는데, 그 어떤 분란이 있을 자리가 없는 것이겠지요.

이 귀함을 오늘 문득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장인어른에게 사위가 백년손님이듯,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백년손님이라면, 그 귀하고 귀한 마음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상담 현장에서 고부간의 갈등에 대한 문제로 상담 오는 분들을 보면 각자의 고유한 자기 이야기 속에 대부분 아프고 힘들고 찢기고 절망 같은 삶의 내용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들 중에 근본 원인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존귀함을 인정받고 싶은 몸부림 때문입니다. 내가 귀하고 소중한데, 그 귀함과 소중함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이 사람 붙잡고 ‘나 귀하지?’, 저 사람 붙들고 ‘나, 귀하지 않아?’ 해보다가, 원하는 반응이 오지 않으면 거기서부터 마음의 아픔, 내적인 고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장인과 사위, 시어머니와 며느리. 처음부터 서로를 백년손님처럼 귀한 존재로 받아들여주고, 귀한 만큼 귀하다 표현을 해 주고, 그러한 표현에 진심어린 감사를 하며 살아간다면, 아마도 그 귀함이 서로를 천국으로 이끌어 줄 듯 합니다. 문득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마음 안으로 젖어듭니다.


-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profile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Clerical Congregation of the Blessed Korean Marty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