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의탁 베드로 수사의 11.03일 강론

작성자
용진 조
작성일
2022-11-03 18:09
조회
5713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죄인들을 받아들이시는 예수님께 대해 투덜거립니다. 왠지 낯설지 않은 이 장면은, 돌아온 작은 아들과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자비에 불평을 터뜨리는 형을 묘사한 ‘돌아온 탕자’라는 유명한 그림과 비유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렇게 두 가지 부류의 대립되는 모습들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와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 그리고 성경에서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 이렇게 세 가지 비유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납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진 양 백 마리는 광야에 있습니다. 들판이나 목초지가 아니라 광야에 있습니다. 광야는 성경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곳이지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습니다. 광야는 전갈과 뱀들 그리고 다른 민족들로부터의 위험에 개방된 장소입니다. 또한 이런 위험과 여러 가지 시련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하던 이집트를 그리워하여 우상을 만들고 하느님께 반역하기도 하는 장소, 즉 인간의 나약함이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하느님의 자비가 명백히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들 옆에는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느님께서 현존해 계셨습니다.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었고, 구리뱀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메마르고 황량한 그곳을 지나가면서도 발이 부르트지 않는 하느님의 각별한 배려를 받았습니다. 또한 신약에서의 광야는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시고 그를 이겨내신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군중을 피해 기도를 하기 위한 장소였지요. 가톨릭 대사전에서는, 광야가 상징하는 주요한 의미는, 이런 광야에서의 놀라운 선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현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광야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시련을 이겨내고 하느님과 친교를 갖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시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로 돌아오자면, 처음에 양 백 마리는 광야에 있었습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소유로서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지상을 순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양은 그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양입니다. 그는 무리를 이탈해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 뒤를 서둘러 뒤쫓아가는 목자를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 그러다가 목자는 양을 찾았습니다. 죽기 일보 전에 회개하여 목자의 품으로 안긴 양. 목자는 그 양을 위해 갈바리아에 지고 올라간 그날의 십자가처럼, 그 양을 어깨에 메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였다는 생각에 그 죄의 무거움도 기쁘게 짊어지고 집으로 갑니다. // 목자의 어깨에 얹혀 하늘나라로 들어간 그 한 마리 양은 바로 회개한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약점, 보잘 것 없음,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그토록 많은 잘못들로 말미암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셨던 출신, 배경, 혈통, 교육, 열성, 율법에 따른 의로움을 대표하는 신뢰할 수 있는 육적인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지요. 오히려 그렇게 자신이 보잘 것 없기에 자신을 높일 것도 없고, 회개거리가 많아 더욱 회개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지상에서의 순례에서 가볍게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야에 아직 남아있는 99마리의 양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목자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세상에 회개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다고 여기는 장점들과 이룩한 성취들, 애쓴 노력들, 잘하는 것들 때문에 눈이 가려져 스스로를 ‘나 정도면 됐지 뭐’라고 생각하면서 합리화하는 사람들입니다.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의 성실, 열성, 과거의 성공, 자랑스러운 어떤 것들은 바오로 사도가 일컫는 ‘이로운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것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알도록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되고 거기에 머물게 되므로 ‘해로운 것들’이 됩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그러니, 정작 우리들이 현재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각자 되돌아볼 일입니다.

 

우리가 이 신비를 알면 알수록, 많이 가졌더라도 절제하고 두려워하며 자만하지 못할 것이며, 가진 것이 없더라도 자신을 때리고 자책하거나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 그리고 또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바로 회개하는 것임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뭘 잘해서, 내가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해서 주님께 드려야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 뭘 잘할 수 있는 능력도, 힘도, 기회도 그분께서 주시니, 우리는 단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 힘쓰십시오.”(필리2,12)라는 성경 말씀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늘나라 전체가 잔치를 벌입니다. 오늘도 하느님을 많이 기쁘게 해드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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