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의탁 베드로 수사의 10월 27일 강론

작성자
용진 조
작성일
2022-10-27 10:23
조회
7235

+ 찬미 예수님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오늘 제1독서를 통해, 아주 유명하고도, 중요한 구절이 선포되었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에서는 그 사람과 쉽게 원수를 맺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 안에 자란 가라지, 즉 악의 나무가 열매를 맺어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써 주변에 악의 씨앗을 뿌리게 됩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마음 밭에 뿌려진 씨앗들은 자라나서 또 다른 악의 나무가 되고 또 그 주변에 악의 씨앗을 뿌리게 되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그러는 것처럼, 나에게 잘못했다고 여겨지는 상대방도 그런 모순과 이기심을 가지고 있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저도 참 많이 저지른 잘못입니다만, 우리는 종종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준 것은 모래밭에 적고, 나에게 못해준 것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바위 위에 새깁니다. 그래서 미워하고 복수합니다. 또한 저 사람이 한 것은 작고, 내가 한 것은 큽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화장실 나올 때가 다른 교활한 나를 종종 발견합니다.

 

죄와 유혹으로 기울기 쉬운, 나약한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너무도 잘 아는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서를 통해, 전투 상대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죄짓게 만드는 악령들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럼으로써 인간 대 인간의 차원만 생각하지 말고, 영적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렇다고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결코 경시할 수는 없지요.) 사실 그 어떤 사람도 악의 영향, 죄의 영향이 사라지면 마치 천사와 같이 착한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선과 아름다움과 진리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나서, 당신께서는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고 하십니다.

 

한편, 제1독서에서는 우리의 전투상대인 악한 영들에 대항해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라고 권고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사람을 악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조장하는 ‘악한 영들’이 아니라,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악한 영들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춥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의 무기’인 진리의 띠, 의로움의 갑옷,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칼로 무장하지 않습니다. 복수의 띠, 독한 말이라는 칼, 복수와 앙심으로 단단해진 마음의 갑옷, 불신의 방패,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이간질할 기회에 발빠른 뒷담화의 신발 등 ‘악한 영들의 무기’로 무장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구’가 아니라 ‘마귀의 도구’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를 무시하고, 기분을 상하는 눈빛, 말투, 행동, 뒷담화하고, 해코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에 대한 온전한 모범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고맙게도 예수님을 위해, 헤로데의 악한 계획에 대한 언질을 줍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헤로데에게 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그에게 대한 어떤 복수, 경고, 저주, 욕설이 없습니다. 단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예언자로서의 당신의 ‘사명’에 대해서 알려주라고 하십니다. 또한, 당신이 파견하신 사람들을 죽이고, 반항하는 예루살렘을 어떻게든 암탉이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모으시려는 ‘아버지로서의 당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당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알려’주시지요(예언).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 악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사명으로 답하라고 분부하십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수도자로서, 그리고 더욱 본질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나에게 쏟아지는 그 모든 악한 행위들이, 나에게 와서 십자가로 변할 것입니다. 모든 고통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 고통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며, 영혼 구원이라는 하느님 사업에 협조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인들의 통공’이지요.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귀찮음과 피로를, 고통과 눈물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을 상해드린 것에 대한 보속으로, 그리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봉헌’할 수 있을 것입니다(파티마에서 세 목동들에게 천사가 알려주신 기도문). 그 죄인들 안에는 저도, 그리고 여러분 각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강론은, 하느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50년간 오상이라는 십자가를 기쁘게 받아 짊어지셨던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신부님의 짧은 기도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께서는 고통을 받으실 때마다 자주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 기도는 이렇습니다. , 하느님! 보십시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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