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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나누기

의탁베드로 수사의 10월 6일 강론

작성자
용진 조
작성일
2022-10-06 21:53
조회
8829

+ 찬미 예수님

16세기에 이탈리아에는 주변으로부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는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할 때 매우 서툴렀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건축일을 하는 형 밑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는데, 자재통을 나르는 간단한 일마저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래서 형에게 많이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하느님께만 일생을 헌신하고 싶어서 카푸친 수도회에 들어갔지만, 수도원에서도 그리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기도에는 열심이었지만, 그의 선천적인 어설픔으로 그가 맡은 소임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함께 사는 수사들에게 많은 꾸짖음과 굴욕을 견뎌야 했고 수도원도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녀야 했습니다. 자신의 소임을 못한다고 여러 번 쫓겨났던 것이지요. 생각해보십시오. 예를 들어, 제가 맡은 성소담당 보조라는 소임을 제대로 못해서 “너 안되겠다. 다음주까지 저기 멀리 oo수도원으로 인사이동해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그 수치와 비참함. 그 공문이 게시판에 떡하니 붙었을 때의 부끄러음.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결과들, 그리고 형제들의 눈빛, 무시하는 말투, 느껴지는 거리감 등등 그것은 일생 동안 짊어져야 할 십자가일 것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바깥 사람들은 이 사람을 따라다니고 찾아오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성덕이 높았고, 기적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망토에 입을 맞추거나 그의 손이 닿았을 때 치유가 일어나는가 하면, 벙어리 아이를 말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장상 수사가 기적을 그만 좀 행하라고 할 정도였지요. 장상 수사가 이런 성덕과 기적의 비결을 물었을 때, 당사자인 몬테그라나로의 성 세라피노 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 수도원에 왔을 때 저는 아무런 재주도 없었고 너무나 미숙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저는 수많은 굴욕과 책망을 받았습니다. 악마도 제 마음속에서 속삭이기를 형제회를 떠나 사막으로 가라고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어느 날 밤, 감실로부터 ‘하느님을 섬기려면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하며, 어떠한 역경이든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역경들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준 사람들을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굴욕감을 주는 이들을 위한 기도가 무척 내 마음에 드는구나. 내가 너에게 모든 은혜를 기꺼이 베풀리라.’ 그분의 익숙한 음성에 저는 곧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이 기적들은 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 세라피노 수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께 청하였고, 찾았고, 문을 두드려서 그들에게 선익이 되는 열매들을 얻어주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부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이 겸손한 성 세라피노 수사의 간구에 성령의 선물을 아낌없이 부어주신 것이지요. 기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표징으로서,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해 하느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고, 희망하고, 그분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 이상 고통이 치워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된 삶 속에서도 진리를 깨닫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올 9월 23일 성 비오 신부님 축일에 산 조반니 로톤도에서 있었던 오말리 추기경님의 강론에서는 성 비오 신부님을 이렇게 기념하였습니다. “고통을 가장 큰 악으로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성 비오 신부님은 가장 큰 악은 고통이 아니라 죄와 이기심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셨다고 말이지요. 그는 “고통은 자기 연민이나 분노, 절망으로 이끄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지만, “십자가”는 사랑과 함께 탄생하고, 예수님과 일치하여 생명을 얻으며, 부활로 우리를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아버지로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고 많은 것들을 두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어떤 것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잘못 믿었구나, 속았구나,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기도에 침묵하실 수밖에 없으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사실 우리 자신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는 말합니다. ‘우리는 때로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자신에게 복이 될지, 독이 될지 헤아려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기도를 드린다’고요(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79). 그렇게 되면, ‘충동에 휩쓸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지옥의 그물과 죽음의 이빨에 걸려들게 하는 기도를 드리게 된다’고요. 그러나 우리의 상태가 그 지경임에도, 주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기도를 하는 와중에 인·사물·현상을 통해 크고 작은 깨달음을 주셔서, 처음에 어설픈 우리 지향을 정말 우리의 깊은 영혼이 원하는 그 지향으로 바꾸어주시기도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성 세라피노 수사의 기도가 하느님께 잘 받아들여졌던 것은 그 영혼의 겸손 덕분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겸손은 우리가 그토록 외면하고 싶고 잘라버리고 싶은 우리의 상처, 부족함, 실패, 고통스러운 상황 안에서 자라납니다. 남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할 때, 상황이 내 뜻대로 잘 풀릴 때, 내가 뭔가를 잘 안다고 생각될 때는 인간은 너무도 쉽게 교만해지지요. 아무도 모르게, 나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께서는 숨어서 우리의 겸손을 키우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너무도 들어주고 싶어서, 오히려 우리에게 빌고 계신 하느님.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도 오늘 하루 겸손의 덕을 청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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