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12.8일 의탁베드로 수사의 강론

작성자
용진 조
작성일
2022-12-17 09:00
조회
5227

+ 찬미 예수님

어떤 시골 마을에 어린 14살 여자아이가 땔감을 모으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아직 2월이라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날이었습니다. 평소대로 아이는 여동생과 친구와 함께 나뭇가지를 줍습니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마을에서 조금 멀리까지 나왔습니다. 어떤 동굴 근처에 있는 작은 강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었을 때, 갑자기 폭풍우 같은 바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근처 동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과 거기에 너무도 아름다운 부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이 밝히신 본인의 이름은 “원죄 없는 잉태”였지요. 비오 9세 교황님께서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신 4년 뒤에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발현 증인이었던 베르나데트 수비루 성녀께서는 성모님께서 요청하신 “회개하여라, 회개하여라, 회개하여라”는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오늘 교회는 전례를 통해 한국 교회의 수호자로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를 공경하고 있습니다.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이 지상에 여러 번 발현하실 때마다 “회개하여라”하고 우리 모두에게 요청하신 바 있지요. 죄를 지어 하느님의 마음을 더 이상 아프게 해드리지 말고 돌아오라고 애원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오늘 제1독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바로 원죄를 짓고 난 다음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입니다.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저 여자 때문입니다.” “뱀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잘못을 자꾸 숨깁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의 원인을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하느님의 어머니로부터 요청받는 “회개”의 시작은, 다른 사람으로 향하는 화살의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분명히 자기 학대나 비합리적인 귀인이 아니라, 성전에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했던 세리의 태도이며,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셨던 성모님의 겸손한 자세입니다.

한편 저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추방된 창세기 초반의 이 이야기는 하느님의 명령에 불순명함으로써 저주와 벌을 받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하지만 선조들이 원죄를 지은 바로 그 현장에서, 우리는 하느님 사랑의 큰 그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의 처음인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사랑의 구원역사 안에 녹아들어 있는 큰 축복이 바로 이 구절에서 예고되어 있는 것이지요.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가운데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 15). 그리스도교 전통은 ‘뱀의 후손’은 사탄을, ‘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탄에게 승리를 거두시기 때문인데요, 그러므로 교회는 ‘여인’을 성모님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바로 이 구절은 이레네우스 교부가 말하는 축복, 즉, “한 천사의 유혹에 넘어간 첫 번째 처녀의 타락이 다른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이 처녀의 믿음으로 극복”(이레네우스, 『이단 반박』, 5,19-20)되는 오늘 복음 말씀과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창세기의 이 구절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모후”께 대한 교의의 근거가 되며, 성모님이야말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신앙인의 모범으로서 성모님을 공경합니다. 직접적으로는 성모님께서 가지셨던 자세, 즉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겸손과 아버지의 뜻에 대한 순명을 본받기를, 2000년 교회역사 내내 일관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오늘 하루 다가오는 것들을 하느님의 손에서 주어지는 것들로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아버지의 허락없이 벌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나에게 다가오는 인, 사물, 현상들을, 성모님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서 나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러자면 감정적으로 힘들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루르드 발현 증인이셨던 베르나데트에게 약속하신 성모님의 말씀이 실마리가 될 듯합니다.

“나는 너에게 이 세상의 행복은 약속하지 못하지만 다음 세상의 행복은 약속하마.”

사랑의 화신이신 성모님께서 하신 이 말씀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순례하는 동안, 행복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되돌아보고, 우리도 모르게 이 세상의 것에 너무 기울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오늘 하루 어머니께서 여러분 모두를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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