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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묵시록의 의미 –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작성자
하느님의 사랑
작성일
2022-11-16 12:36
조회
5449

 

  11월 16일 /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1독서 : 묵시 4,1-11 / 복음 : 루카 19,11ㄴ-28

 

  연중 33주간 평일 독서와 34주간 평일 독서에서는 요한 묵시록 말씀이 전해집니다. 이번 33주간에도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간 독서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매해 요한 묵시록 말씀을 대할 때마다, 너무 상징적이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나갈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그 의미들을 보려고 합니다. 요한 묵시록 말씀의 의미를 알고, 그 말씀을 통해 기도로 나아갔으면 합니다.(참조 : 정태현, 요한 묵시록의 거룩한 독서 1-3, 말씀터 제36-38호, 한님성서연구소)

 

  신약성서의 마지막 책 요한 묵시록은 수많은 환시와 표상과 상징을 포함하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통합니다. 더구나 초기 교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단자들이나 사이비 종교가들이 이 책의 내용을 본 맥락에서 벗어나 엉뚱하게 해석함으로써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때로는 파국으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이 책은 현재나 미래의 사정을 정확히 예측해 놓은 점술책이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특정한 시대 특정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그리스도교의 핵심 메시지를 편지 형태로 써 보낸 예언이요 묵시입니다. 박해가 심한 때였으므로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분명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징적인 표현이나 환상의 형태, 혹은 먼 훗날에 일어날 예언의 형식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쓴 것입니다.

 

  묵시록의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밝힙니다. 이 요한은 사도 요한이 아닙니다. 요한은 소아시아 교회의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예언은 구원받기 위한 회개를 강하게 내세우지만 묵시는 선과 악 사이의 최후 결전과 심판을 강조합니다.

  묵시록의 구조는 머리말과 맺음말을 제외하고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1,9–3,22)는 편지 형태로 일곱 교회에 선포한 예언이면서 후반부 (4,1-22.5) 의 입문

  구실을 한다. 후반부는 본격적 의미에서 묵시문학에 속합니다.

 

  요한 묵시록의 대주제는 심판과 구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세력과 악인들을 반드시 징벌하시고 의인들에게는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이 책의 핵심적 메시지는 구원의 보편주의 입니다. 곧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살해된 어린양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로마 세계로부터 박해를 받고 그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하여 스스로 소외된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1장에서는 인사말과 소명 대목이 소개됩니다. 2-3장에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경고와 권고의 편지가 나옵니다. 성서에서 일곱은 완전을 뜻하는 상징수이므로 저자의 메시지를 일곱 도시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2-3장에 소개된 일곱 개의 편지에는 저자가 모든 교회에 전하고자 한 보편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일곱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인사말에서 은총과 평화의 원천으로 세 분을 지적합니다.

 

  첫째 원천은 1장 4절에 보면,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입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곧 인간 역사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주권을 드러냅니다.

  둘째 원천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입니다. 일곱 영은 사람들에게 충만한 은총을 내리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원천인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지상 생애, 부활, 그리고 현재의 신분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느님께 순종하면서 그분의 성실한 증인으로 사셨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죽음의 첫 번째 승리자가 되셨으며, 지금은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셨다.

  인사말에서, 하느님의 주권, 성령,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인사말에 이어 자신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는지 밝힙니다. 묵시록의 요한은 예레미야처럼 환시를 보기 전에 먼저 목소리를 듣습니다. 나팔 소리는 하느님 발현에서 등장하는 소리입니다. 이 목소리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이 예수님에게서 받은 소명은 환시 가운데 보고 들은 것을 양피지 두루마리에 기록하여 아시아 일곱 교회에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일곱이라는 수가 완전을 상징하므로 두루마리에 기록된 내용은 일곱 교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 교회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교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와 세상에 일어난 일과 일어나는 일과 일어날 일들을 요한에게 보여 주시고 그것을 기록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요한은 이 소명을 충실히 받들어 묵시록을 작성한 것입니다.

 

  3장까지 묵시록 저자의 현 위치는 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4장부터는 천상으로 장소가 옮겨지고 그 내용도 환시와 더불어 본격적인 묵시가 됩니다.

 

  오늘 독서는 4장은 창조에 관한 환시이고, 그 의미를 봅니다.

 

  4장 1절을 보면, 요한은 1장 11절에 묘사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 를 또다시 듣습니다. 그 목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입니다. 1장에서처럼 여기서도 요한은 이 목소리를 들으며 성령에 사로잡힙니다. 요한은 자기 앞에 열린 하늘의 문을 통해 천상 어전의 모습을 봅니다. 천상 옥좌에 어떤 분이 앉아 계시는데, 그분의 모습이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고 옥좌 둘레에는 비취옥 같은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4장 4절을 보면,최고 어른의 어좌 둘레에는 흰옷을 입고 금관을 쓴 스물네 원로가 저마다 다른 어좌에 앉아 있고 옥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타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스물넷이라는 수는 성전에서 차례로 예배를 담당하는 사제들의 24조를 가리킬 수도 있고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승리를 뜻하는 흰옷을 입고 임금처럼 머리에 금관을 쓰고 어좌에 앉아 있습니다. 묵시록의 저자 요한은 열두 사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신약의 그리스도 교회야말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계승하는 참된 하느님 백성임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 백성을 대표하는 분들이 바로 천상의 스물네 원로들인 셈입니다.

 

  4장 5절을 보면, 주님의 어좌에서 터져 나오는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은 하느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수반되는 요소들입니다. 요한은 어좌 앞에서 타오르는 일곱 횃불을 하느님의 일곱 영과 동일시하는데, 이 일곱 영은 사람들에게 충만한 은총을 내리시는 한 분 성령을 가리킬 수도 있고 하느님을 모시는 최고위 일곱 천사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4장 6절을 보면,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다. 그 네 생물은 저마다 사자, 황소, 사람 얼굴, 독수리 같다. 이 네 생물은 또 저마다 여섯 개의 날개를 가졌다. 리옹의 이레네오 성인은 이 네 생물을 네 복음서 저자 또는 복음서 자체로 여겼다. 사자는 마르코, 황소는 루가, 사람 얼굴은 마태오, 독수리는 요한입니다.

 

  4장 8절을 보면, 네 생물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고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삼중으로 찬양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묵시 48절에서는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영원하심을 노래합니다.

 

  성경 말씀으로 기도하려고 할 때, 먼저 그 성경 말씀이 전하는 의미를 알면, 기도가 명확해지고 분명해 집니다. 묵시록의 1장에서 4장까지, 인사말, 요한의 소명,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그리고 천상 예배로 이어집니다. 요한 묵시록의 말씀 중에서 1장에 2, 4장에 1번 나오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이란 표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과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셨고,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있을 때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셨고, 과거 우리와도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현존으로 함께 해주십니다. 요한 1서 3장 2절의 말씀처럼 앞으로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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