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보이는 예수님 –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작성자
하느님의 사랑
작성일
2023-02-27 11:50
조회
4664

 

  2월 27일 /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 : 레위 19,1-2.11-18 / 복음 : 마태 25,31-46

 

  오늘 복음은 최후의 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임금처럼 “영광에 싸여” 내려오시어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십니다. 곧 그들이 곤궁에 처한 이들에게 자비의 선행을 베풀었는지 여부에 따라 그들의 행실을 판가름하시고 상이나 벌을 내리십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가난한 이를 당신의 형제로 여기시고 당신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이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 35-36)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 안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당신 자신을 도와주는 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 안에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도와주는 모습들을 보고자 합니다.

 

  어느 날 저녁 프란치스코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가 보았더니 한 험상궂은 한센병 환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몹시 추우니 잠시 방에서 몸을 녹이면 안 되겠느냐고 간청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환자는 다시 저녁을 함께 먹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그 환자는 다시 부탁하기를 자기가 너무 추우니 프란치스코에게 알몸으로 자기를 녹여달라고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입었던 옷을 모두 벗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 한센병 환자를 녹여주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프란치스코가 일어나보니 그 환자는 온 데 간 데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왔다간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곧 모든 것을 깨닫고는 자신과 같이 비천한 사람을 찾아와 주셨던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기도가 바로 유명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문’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꽃동네 형제회 창설자 오웅진 요한 신부님의 체험입니다. 1978년 8월 16일 꽃동네 형제회 창설자 오웅진 요한 신부님은 증평읍 반탄교 위에서 웃옷은 벗겨지고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져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오웅진 신부님은 이분을 모시고 청주병원으로 가는 도중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늘로부터 듣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오늘같이 기쁘고 자랑스러운 날이 어디 또 있느냐?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오신부가 살려주니 참으로 기쁘고 고맙다. 나는 오늘 너와 새로운 계약을 맺을 터이니 앞으로 이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내 이름으로 네가 맞아들이면 나머지 것은 내가 모두 책임져 주겠다.”

 

  이를 통해 오웅진 신부님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25,40)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을 맞아들여 정성껏 돌보는 것이 바로 그 약속의 말씀에 충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세상의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이들’의 고통과 죽음을 대신하기 위해 밤낮없이 기도하며, 이러한 실천적 삶을 적극적으로 살다가 마침내 죽음으로써 가장 큰사랑을 차지하려는 정신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꽃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을 주님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오웅진 요한 신부님은 가장 작은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우리가 굳이 밖으로 가난한 이들을 찾으러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또 뉴스나 여러 가지 소식을 통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는 그저 고통 받는 이가 아니라, 곧 보이는 예수님이십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고통 받는 이, 즉 보이는 예수님께 사랑 실천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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