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부활 제 3주간 목요일 강론_ 지민준 베드로 까니시오 수사

작성자
용진 조
작성일
2022-05-06 19:50
조회
8867

[ 202255일 목요일 강론 ]

1독서 : 사도 8,26-40 / 복음 : 요한 6,44-51

오늘은 한 아이를 사랑한 ‘장난감 공’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이 장난감 공은 아주 작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어린아이의 손에 충분히 쥐어질 정도입니다. 이 공은 자신이 그 아이에게 너무 비싼 장난감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감히 손도 대지 못하고, 들여다보기만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오히려 아무 가치도 없는 공처럼, 그 아이가 마음대로 다루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땅에 던지거나, 발로 차거나, 구멍을 내어도 상관없었습니다. 졸려서 잠이 들 때면 공은 마치 버려진 것 같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이가 다시 공을 집어들 때까지 기다립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아이가 마음이 내킨다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작은 공이 그 아이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온전히 자신을 내맡겼습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한 소화데레사 성녀의 ‘작은 공’이야기입니다. 우리 수도회의 특별주보이시기도 한 성녀는, 자신이 예수님의 ‘작은 공’이 되길 바랐습니다. 주님께서 보시기 좋으실 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루시길 원했습니다. 성녀는 15세에 가르멜 봉쇄수녀원에 입회하여 24세에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시기까지, 단 10년 간의 수도생활을 하셨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순박한 믿음과 의탁, 그리고 애덕으로 교회 정신을 꿰뚫으셨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셨습니다. 마침 오늘이 어린이날이네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일컬어 “생명의 빵”이라고도 하시고, 그것이 바로 당신 살이며, 세상에 생명을 준다고 하십니다. 현대의 우리들은 이 말씀이 “파스카의 신비요, 성체성사의 신비의 핵심”임을 잘 압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많은 낟알들이 모여 갈리고 섞여서 한 덩어리 빵이 되듯, 하늘에서 내려오신 빵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 지체들이 한 몸으로 결합하여 있습니다.’(키프리아누스) 또한 ‘생명이신 분께서 죽을 운명의 육이 되어 오셔서, 당신 육을 생명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은 그것을 먹는 모든 이에게 생명을 줍니다.’(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부터 사람들은 뒤돌아서 가버립니다.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는 게 그 이유였죠.

아마도 사람을 제물로 바치던 이교도의 풍습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만일 예수님께 대한 신뢰가 있었다면, 말씀을 이해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 옆에서 이해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아셨음에도, 모든 시대 모든 이들을 위하여 진리를 선포하셔야만 했습니다.

 

오늘 나에게 허락하신 상황이 도저히 하느님 당신의 뜻이라고 믿기 힘들 때.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거부하고 뒤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때, 깨닫게 해주실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믿음일 것입니다. ‘무슨 뜻이 있으시겠지’ 하고 말이지요.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오신 분에 대한 신뢰는, 분명 그분께 사랑받았던 기억 속에서 싹틉니다. 여기 있는 분들에게 따로 가서 ‘지금까지 주님께서 주신 기도응답, 은총 등 감사거리를 좀 말씀해달라’고 부탁드린다면, 좀 과장해서 1시간씩은 말씀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분은 밤이 새도록 이야기해도 부족하시겠지요. 사실 ‘감사’는 그저 단 것을 맛보았을 때만 ‘감사합니다’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사를 주신 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고,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믿게 됩니다. 나중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둔 밤을 지나게 될 때, 우리는 그 감사와 사랑의 기억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오늘 하루, 소화데레사 성녀께서 저희 모두에게 주님과의 사랑의 기억을 떠올려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주님께서 당신에게 베푸셨던 어린아이 같은 믿음과 의탁의 마음을 전구해 주시기를 함께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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