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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나누기

후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작성자
하느님의 사랑
작성일
2022-01-19 09:49
조회
10555

 

1월 19일 /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 1사무 17,32-33.37.40-51 / 복음 : 마르 3,1-6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는 장면입니다. 당시 율법에 따르며, 안식일 법을 위반하는 자는 추방당하거나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것이 아니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할 수 없다는 법적인 규정까지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치유해준 병자는 손이 오그라든 상태였기 때문에,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해석을 하십니다. 바리사이들에게 질문을 하며 그들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예수님의 질문이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악한 생각을 들추어내어 회개하도록 촉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대한 그릇된 믿음으로 인해 율법 준수를 최고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른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병을 치유해 주시고, 우리의 어려움을 함께 해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셨습니다. 자기가 믿는 하느님 모습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후하시고, 자비로우시고, 큰 사랑의 하느님을 못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완고함에서 벗어나서 후하시고, 자비로우시고, 큰 사랑의 하느님에 대해서 보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복음으로,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가서 재산을 상속받고 집을 떠나, 방종한 생활을 합니다. 재산이 떨어졌을 때, 그는 아버지의 자비하심에 맡기며, 품팔이꾼이라도 써달라며 돌아옵니다. 작은 아들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 때문에 잔치를 벌입니다. 하지만 큰 아들은 돌아온 동생을 위해 잔치를 하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큰 아들을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자비에 불평합니다.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너는 늘 나와 친교를 나누고 있었음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은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율법적인 분이 아니라, 자비로운 사랑의 하느님임을 알려주십니다.

 

  과거에 저는 완고한 마음에 머물렀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가톨릭 동아리 임원을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일주일에 2번 기도모임이 있었고, 공식적인 동아리 행사가 있었습니다. 가톨릭 동아리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던 상황에서, 제 임기에는 동아리가 없어지면 안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도모임과 공식적인 행사 준비를 참 성실하게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노력과는 달리 1학기가 지나고 모임에 나오는 수가 줄고, 2학기가 시작되고 모이는 인원이 점점 더 줄었습니다. 그동안 인원이 줄 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엠티를 가야하는가’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엠티를 준비하는 데에 부담감이 너무 커서 엠티만은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엠티를 가고싶지 않은 완고한 마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모임에 저와 다른 한 명만 나오는 상황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여차 저차 준비를 해서 엠티를 갔다오게 되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마음을 나눈 엠티 이후에, 동아리 학생들은 형식적인 기도모임에도 잘 나왔습니다.

 

  학생들의 마음을 고려한 엠티 이후에 형식적인 기도모임 참여도 잘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어렵다는 완고한 마음을 내려놓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 규정을 지켜야만 하는 하느님만을 고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규칙이 아니라, 지금 당장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보고 치유하십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믿는 하느님은 꼭 이런 모습일거야 라고 나만의 하느님 모습을 그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 139편에서는 하느님을 이렇게 전합니다.

 

  하느님, 당신의 생각들이 제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것들을 다 합치면 얼마나 웅장합니까?

  세어 보자니 모래보다 많고

  끝까지 닿았다 해도 저는 여전히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시편 139, 17-18)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후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기억합니다. 가끔 바리사이들의 완고한 모습을 보며, 나와는 상관없는 모습이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마음안에 혹시 이러한 완고한 마음 때문에, 하느님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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