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사순 제 5주간 화요일 강론

복지회 형제들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1-04-12 15:23
조회
1194



찬미예수님!

 

오늘 독서에서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기 위해 계속 어려운 광야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 줄 것을 믿고 이집트에서 하느님의 힘으로 나왔지만 광야의 생활은 갈수록 힘이 들고 물과 양식도 없으며 계속 만나만 먹는 것도 지쳤습니다. 게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바로 눈 앞에 보이지 않습니다. 과연 살아서 들어갈 수나 있는지 의심이 되어 조급해졌습니다. 점점 지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맡기신 이와 자신들을 갈라놓음을 모르고, 또 당장 힘들기에 무엇이 진정으로 자신들을 지켜주는 것인지 모른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그것이 죽음의 길인지 그들은 모릅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무지하지만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에게 불 뱀을 보내시고, 그제서야 다시금 하느님의 힘을 느낀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모세는 그러한 백성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주님께서는 구리뱀을 기둥 위에 달아 놓고 그것을 보면 살아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구리뱀을 통해 백성들은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상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독서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져버린 바리사이와 유다인들에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이르십니다. 바리사이나 유다인들에게 메시아는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는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주는 것 등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 영혼의 구원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는 것이 곧 죽음이라는 것,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이 자기 죄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흔히 자신의 죄를 깊이 감추거나 꾸미기 십상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하느님 앞에 서면 자신의 더러운 것들을 보시고 내쳐질까봐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은 하느님과 나를 가로막는 벽이 생기게 하여 멀어지게 하고 나는 자유를 찾겠다며 하느님 곁을 떠나려고만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은 나를 힘들게만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생명이신 하느님을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하느님을 멀리 했을 때 나는 평생 내 진정한 모습도 모르고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지 못한채 용서받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나누지 못하는 외톨이가 됩니다. 진정한 나는 새로운 생명을 얻지 못한채 자신의 죄 속에서 죽게 됩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길을 알려주십니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우리가 나의 죄 속에서 허우적대며 광야의 길을 헤매고 있을 때 하느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드님, 성자이십니다. 내가 나다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나는 있는 나다”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하며 그분께서 성부와 같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적인 존재이심을 알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하시며 그분을 통해 들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생명의 빵’이시며 ‘세상의 빛’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의 아들을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것임을 알려주시면서 당신께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제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들어올려질 것임을 미리 예언하십니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의지와 당신의 충만한 진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들어올려진 십자가를 통해 모든 이들이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다시금 하느님과의 관계를 되새기고 자신의 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고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용서와 사랑의 자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믿고 고백”(가톨릭 교회교리서 423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려 오신 그분을 통해 믿고 다가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진정한 계획과 진리,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열정적으로 따르고 있습니까? 드러내기 싫은 내 모습 때문에 그분을 멀리 하지는 않습니까? 혹은 나 혼자 스스로 잘 살수 있다고 착각하고 계시진 않은지요? 내 모습 자체를 차분히 바라보시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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