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부활 제 3주간 화요일 강론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1-05-10 11:57
조회
838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 말씀은 어제의 복음말씀과 이어집니다. 6장 15절에 보면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을 군중은 따르며 임금으로 모시려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제 복음에서 군중에게 육체를 배부르게 하는 빵, 즉 썩어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오늘 복음에서 군중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러면서 구약시대에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하고 만나를 내려주신 일을 말합니다. 이것은 모세같은 지도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해준 모세같이 그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게 해줄 지도자를 찾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이 광야에서 하루 먹을 것이 없어 쪼들리며 힘들어 할 때 만나를 먹도록 하게 하였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시는 모습을 본 군중은 자신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고 또한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실 기대에 차서 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징으로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군중은 잊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조상들에게 빵을 내려준 이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군중은 지도자에 기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구원을 얻기 위해 하느님과 관계를 맺으며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으려하기 보다는 그저 현재의 자신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생각하며 메시아를 그렇게 해주는 이로만 바라볼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분이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들에게 진정한 지도자는 그런 삶의 조건들을 해결해 주는 이가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갇혀있는 것들로부터 구원하고 해방시켜 주시려는 하느님 아버지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라는 군중의 질문에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참된 빵을 내려주시는 이는 하느님 아버지시라고 깨닫게 하십니다.

 

   군중은 그 빵을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예수께서 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심을 믿는 것이 곧 하느님과 화해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군중이 바로 이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앞에 서있는 사람이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하다니 이상한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군중은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았지만, 빵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앞으로도 그렇게 자신들에게 원하는 것을 채워줄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군중은 구약시대에서 자손을 번창하게 하고, 백성에게 먹을 것을 내려주시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표징을 깨닫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한치 앞도 못 보면서 삶의 행복이 조건으로만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말입니다. 특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많은 성공과 행복의 잘못된 조건의 유혹에 빠져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은 너무 어렵고 불편한 길이기 때문에 찾으려 하기보다 눈앞의 욕구를 채우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내 욕구가 채워진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채우면 채울수록 더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오히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는 말씀을 통해 군중들에게 ‘너희가 쥐고있는 행복이라는 집착을 놓고 너희가 진정으로 원하고 배고파하는 사랑의 빵을 먹으러 나에게로 오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질 때, 우리는 매우 답답해집니다. 하느님과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내 은밀한 곳에 손을 내밀어 보듬어 주시려는 하느님을 거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보기 싫고 힘이 없어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끊어진 관계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봅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이는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으며 그 사랑을 통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지도자도 아니시고 혁명가도 아니십니다. 우리의 깊은 곳까지 사랑하시어 우리를 구원하러 직접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직접 만나고 화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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