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의탁 베드로 수사의 8월 18일 강론

작성자
용진 조
작성일
2022-08-19 12:49
조회
8106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 

1독서 : 에제 36,23-28 / 복음 : 마태 22,1-14

+ 찬미 예수님

옛날에 중세의 한 수도원에 천사와 같이 거룩한 수도원장님이 한 분 계셨다고 합니다. 그 마을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먼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조언을 들으려고 찾아왔지요. 그분의 명성은 더욱 널리 퍼져나가 교황님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에서는 거룩한 수도원장님을 초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도원장님은 초청을 받아들였고, 교황청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은 후, 수도원으로 돌아왔지요. 그런데 바티칸에 다녀온 그 수도원장님을 보고는 어떤 한 수사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형제여, 당신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천사였는데, 마귀가 되어서 돌아왔구려.” 그 수도원장님은 교황님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으로 인해 교만해졌던 것이지요. 결국 그는 타락하여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느끼는 바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떠올릴 적마다 불러주신 하느님보다 그분의 선물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그 수도원장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겸손’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잊지 않는 것’에 대해 묵상하곤 하지요.

오늘 복음에서는 임금님의 잔치 초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밭일과 장사’로 상징되는 ‘세속적인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 잔치가 열렸으니 어서 오라는 종들을 박해하기도 하지요. 그들은 선택받았고 부르심 받았으나 ‘주님 육화의 신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이 신비와 일치를 이루며 살아갈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대 그레고리우스는 말합니다.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고, ‘주님 없이’ 당장 눈앞의 이익, 세상적인 일에 열중합니다. // 다른 한편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도 나옵니다. 그 사람은 맨 먼저 초대를 받았지만, 예수님을 거부함으로써 구원에서 제외되는 많은 유다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맥상, 하느님에게서 부름을 받았지만, 이 무상의 초대를 오용하고 남용함으로써 그분의 나라에서 배제되는 이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주석성경 마태 22장 각주11).

저는 복음의 이 인물들을 제 안에서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을 따라간다고 열심히 뭔가를 했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 내 뜻대로, 내 열정만 가지고, 내 옳음, 내 체면, 내 기준으로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에는 예수님 때문에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본전이 생각나서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무리가 되기 일쑤입니다. 좋은 마음을 넣어주시고, 좋은 일을 행할 힘도 주셨는데, 어느덧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듯 혼자 뿌듯해하며 내 영광으로 취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 제 마음은 마치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뒤섞여있는 혼인 잔치 현장과 같습니다. 수도자이지만 구원의 안전지대에 있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제 마음 안에는 하느님의 은총과 저의 약함이 뒤섞여있어 이 생애가 끝날 때까지 투쟁해야 함이 분명해 보입니다. // 사실 여기에서 혼인 잔치란, 현세에서의 하늘나라 잔치, 즉 성찬례를 의미합니다. 미사는 모든 사람 특히 죄인들까지 당신 나라의 기쁨에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자체이지요. 교회는 악인과 선인 모두를 신앙으로 데려오지만 그들 모두의 삶을 변화시켜 영적인 은총의 자유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의 죄가 그것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현세에서 교회는 그들을 모두 품고 있지만, 이승을 떠날 때 그들을 가르게 됩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40편), 38,5-7) 사실 이것은 두려운 말씀이지요. 코린토1서에서는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1코린 11,29)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미사와 영성체 때 내가 습관처럼 영하고 있는지, 아니면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지 각자 되돌아볼 일입니다.

한편 하늘나라 잔치에 머무를 수 있는 자격요건인 ‘혼인예복’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혼인예복’을 통해 하느님의 초대는 무료이지만, 초대를 받은 이는 자기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잔치에 참여했다는 것이 ‘세례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 그레고리우스는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혼인 예복을 갖추지 않아 쫓겨난 그 사람은 거룩한 교회에 속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지요. “창조주께서 교회를 당신과 결합시키기 위해 혼인잔치에 오셨을 때 그분께서 지니셨던 것이 ‘사랑’이요, 오직 그 사랑만이 당신의 외아들로 하여금 당신께서 선택하신 이들의 마음을 당신과 결합시키도록 합니다.”(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40편), 38,9) 그것은 “깨끗한 마음과 바른 양심과 진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1티모 1,5)이요,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하는 그것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90,6.). 제1독서에 나오듯, 우리가 사랑할 수 있도록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는 분은 전적으로 하느님이시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이 해야할 것은, 창설신부님 말씀처럼, 당신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려는 영혼 구원에 ‘협조’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에게서 선의를 발견하려고 성의노력하는 것, 회개의 부르심에 마음의 문을 닫지 않는 것,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주님께로 마음을 향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겠지요.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처음 부르심에 응답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매순간 부르심에 협조하실 수 있는 힘 주시길 기도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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