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가난 –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작성자
하느님의 사랑
작성일
2022-09-07 14:50
조회
8137

 

  9월 7일 /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제1독서 : 1코린 7,25-3 / 복음 : 루카 6,20-26

 

  오늘 복음은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이 함께 전해집니다. 행복선언에서는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곧 이어지는 불행선언은 행복선언의 반대입니다. 부자, 배부른 사람, 웃는 사람,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행복선언에서 전하는 가난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먼저 루카가 전하는 가난의 의미를 보기 전에 루카 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봅니다. 삶의 자리를 알면 루카가 의도하는 가난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루카의 삶의 자리는 로마가 평화를 누렸던 팍스 로마나라는 상황 속에 놓여진 교회 공동체였습니다. 루카의 공동체는 로마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고, 또한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부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자들 중에는 나눔과 자선을 무시하고, 로마의 경제 윤리를 따르기도 했습니다.

 

  루카는 자신의 공동체 내에서 두 그룹의 평화스러운 공존을 모색하려 했으며, 많이 가진 자가 가난한 자와 나누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실제적인 예로, 자캐오는 모든 것을 팔도록 요구되지 않았고 소유의 절반을 내어주면 충분한 것으로 전합니다. 이를 통해 루카 공동체가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모두 포함하고 있었고, 갈등해소를 위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루카가 가난의 의미를 잘 전해 줍니다. 루카는 아무 설명을 붙이지 않고 단순히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라고 전합니다. 여기서 가난이란 말은 무조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가난하게 된 너희를 가르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가난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 행복하게 될 것인가? 구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가난한 이들은 이미 ‘지금부터’ 복되며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뒤따르며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사는 사람은, 지금은 가난과 고통 속에 산다고 해도 이미 축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반대로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루카 6,24)이라고 전합니다. 이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삶의 목적을 지상 삶의 행복에 두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가난한 사람과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현실에만 몰두함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즉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늘 행복선언에서 가난을 따르는 것은 가난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가난입니다. 부유한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자신이 의지하는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 재물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재물에 집착하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이 말씀에서 전하는 가난은 영적인 가난보다 물질적인 가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난은 물질적 가난과 영적인 가난을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은 물질적인 가난과 영적인 가난, 두 가지 가난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가난의 이미지를 기억해 봅니다. 가난에 대한 상징성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교황님은 한국에 방한하셨을 때, 작은 차를 타셔서, 우리에게 가난의 상징성을 전해주셨습니다. 우리도 가난을 마음으로도, 실제적인 삶의 자리에서도 어떻게 살아낼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전체 1,616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526
의탁베드로 수사의 9월 8일 강론
용진 조 | 2022.09.11 | 추천 0 | 조회 6999
용진 조 2022.09.11 0 6999
1525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가난 –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2.09.07 | 추천 0 | 조회 8137
하느님의 사랑 2022.09.07 0 8137
1524
의탁 베드로 수사의 9월 1일 강론
용진 조 | 2022.09.02 | 추천 0 | 조회 6833
용진 조 2022.09.02 0 6833
1523
예수님께 청함과 데려감 –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2.08.31 | 추천 0 | 조회 8349
하느님의 사랑 2022.08.31 0 8349
1522
하느님 말씀에 대한 열정과 초대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하느님의 사랑 | 2022.08.24 | 추천 0 | 조회 8307
하느님의 사랑 2022.08.24 0 8307
1521
의탁 베드로 수사의 8월 18일 강론
용진 조 | 2022.08.19 | 추천 0 | 조회 8146
용진 조 2022.08.19 0 8146
1520
하느님의 관대함 – 연중 20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2.08.17 | 추천 0 | 조회 8517
하느님의 사랑 2022.08.17 0 8517
1519
의탁베드로 수사의 8월 11일 강론
용진 조 | 2022.08.16 | 추천 0 | 조회 10924
용진 조 2022.08.16 0 10924
1518
이 세상에서 죽는 것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하느님의 사랑 | 2022.08.10 | 추천 0 | 조회 12543
하느님의 사랑 2022.08.10 0 12543
1517
하느님께 함께 하느님에 대해 말한 성 도미니코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하느님의 사랑 | 2022.08.07 | 추천 0 | 조회 9099
하느님의 사랑 2022.08.07 0 9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