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의탁 베드로수사의 강론_08.04

작성자
용진 조
작성일
2022-08-04 21:23
조회
12339

+ 찬미 예수 마리아 요셉

 

오늘 주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도,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신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은 그리스도를 계승하는 교황님의 수위권을 뒷받침하는 성경말씀으로 매우 유명하지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하신 것은, 그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믿었고, 입으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금 뒤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반석’과 ‘하늘나라의 열쇠’, 그리고 ‘사탄’ 사이의 먼 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 실마리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느님의 일’이란 베드로를 통해 저승의 세력도 감히 이길 수 없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고, 베드로가 대표하는 교회에게 매고 푸는 권한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배척을 받고 부활을 위한 고난과 죽음을 겪으셔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사람의 일’이란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래서는 안된다고 뜯어말린 것이었지요. 아마도 베드로 사도의 생각은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님이 고통받고 죽는다는 것을 말리는 것이, 제자된 도리로서, 혹은 가깝고 친한 관계로서 당연하다 여겼을지 모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것이 사랑의 한 속성이니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대목에서 ‘시몬아’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의 일’ 즉, 인간적인 도리, 정, 세상적으로 합리적인 기준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 판단과 행동들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적대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순간, 하느님의 도구가 아니라 마귀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하느님의 뜻에 맞는다면 인간적인 기준에서 볼 때, 배척해야 할 ‘슬픔’도 매우 유익합니다. 코린토 2서의 말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를 자아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세적 슬픔은 죽음을 가져올 뿐”(2코린 7,10)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적인 기준을 만족하지는 못하였을지라도, 하느님의 시선에서는 매우 귀한 도구였던 아르스의 성자 성 비안네 신부님의 삶은 좋은 모범이 됩니다. 비안네 신부님이 학업에서의 어려움을 겪었다거나 돈과 재물을 계획성 있게 사용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고해소에 17시간씩 계시기도 했는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바친 여러 어마어마한 사랑의 희생은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십자가와 온전히 일치해있었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에게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일’이란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수난하고 죽으신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나에게 오늘 하루 허락하신 수고와 어려운 순간들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이 그 작은 희생들을 초자연적인 세계로 들어올려 주십니다.

 

월터 J. 취제크 신부님은 『모든 것 안에서 그분과 함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우리 삶에서 현존하시는 것을 막는 유일한 걸림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 사실 우리가 기도 중에 하느님께 향할 때마다 그분도 우리를 향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분은 더욱더 우리를 생각하시고, 그분이 점점 더 우리 생각의 중심이 되실수록 현존이 점점 더 커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 되시려면,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의 현존을 끊임없이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킬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의 턱밑에서, 우리가 마음을 조금만 열면 언제든 우리에게 응답하실 준비를 하고 계신 주님의 현존을 깨닫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장미 위에 핀 그분의 피를 봅니다.

그리고 별빛 안에 그분의 영광을,

영원한 눈 사이로 그분 몸이 빛나는 것을,

그분 눈물이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리나니

나는 모든 꽃 속에서 그분의 얼굴을 봅니다.

천둥과 새의 노래 소리들은 단지 그분의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힘에 의해 깊이 새겨집니다.

바위들은 그분이 손수 쓰신 말들입니다.

그분이 걸으신 모든 길은 닳아버렸습니다.

그분의 강한 심장은 끝없이 부딪치는 바닷물을 휘젓습니다.

그분이 쓰신 가시관은 모든 가시와 엉켜 있습니다.

모든 나무가 그분 십자가입니다.

 

  • 아일랜드 시인 조지프 메리 플런킷

 

“하느님께서 내가 하는 말 안에,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 책에, 내가 읽고 있는 이 상본에 계신다. 그분은 내 옆에서 기도하는 수녀님의 목소리이시다. 그분은 나와 함께 기도하는 수녀님들 각각의 가슴과 영혼과 정신 안에 계신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 월터 J. 취제크 신부님의 『모든 것 안에서 그분과 함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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