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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나누기

참 생명을 주는 형상 – 나해 사순 제3주일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21-03-07 11:44
조회
1114

참 생명을 주는 형상

 

 

    수도생활 초기에 양성 담당 수사님께서 강조하셨던 말씀이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여태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다시 자신을 새로 세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세요!” 당시에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수도생활에 적응하기에 바빴던 것 같습니다부끄럽지만종신서원을 하고 10년이 지나서 마흔이 가까운 지금에서야 그 말씀의 뜻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함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말씀을 접하시고 많은 분들이 다소 의아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으시며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습이 너무 크신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기 때문입니다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환전꾼들을 쫓아내시는 것도 모자라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시기까지 하시지요하지만 이어서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고 엄하게 이르셨듯이그분께서는 결코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를 위해서 그러셨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무시당하실 때만 그처럼 화를 내시며 강하게 반응하셨고(마르 8,31-33; 마태 12,22-32 참조), 자신에 대한 온갖 천대와 모욕과 무시에도 화를 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한 마리 순한 어린양처럼 묵묵히 겸손하게 감내하셨지요그분께는 오직 하느님 아버지께서 삶의 전부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존재하셨고 오직 아버지와의 관계로 당신 자신을 세우셨습니다(요한 14,10; 17,7-8 참조). 그분께 정체성과 자존감자신감과 참 자아를 주시는 분은 오로지 아버지 한분뿐이셨던 것입니다.

    로마인들의 압제 속에서 악인들을 심판할 찬란하고 위엄있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분께 겉으로 드러나는 표징을 요구했습니다그러한 모습은 다름 아닌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눈에 보이는 물질에 마음을 빼앗겨 하느님을 내세워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만약 우리가 깨어있지 못하고 하느님 외에 외적이고 육적인 것들 – 물질이나 권력과 사회적 지위와 명예인기와 외모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와 여러 종류의 쾌락 등 – 에 이끌리고 지배되어 살아간다면 표징을 요구하는 유다인들과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우상숭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우상에게 절하며 사는 모습과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우상들은 결코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그러한 것들에 결코 우리의 참 자아가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그런 것들로 지어진 집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시련이 닥치면 곧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테지요(마태 7,24-27참조). 겉으로 보이는 웅장하고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수차례 파괴됨을 반복했듯이 말입니다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는 말씀처럼심판 날에 그 모든 것들이 온전하게 드러날 것입니다(이사 2,2-5 참조).

    요즘 물질만능주의 분위기 속에서 퇴직 후에 우울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노인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고 경제적 능력이 없어지자 마치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여태까지 쌓아온 자신의 모습이 갑작스레 무너져 내리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이지요하지만 아무리 자신에게 능력과 힘이 없을지라도,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 하더라도 우리 한 사람한 사람은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한없이 귀하고 인정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놓여있든지타볼 뿐만 아니라 겟세마니와 골고타에서도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하셨던 그 고백을 우리도 똑같이 들을 수 있습니다세상의 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고 사라질 지라도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늘 변함이 없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지금 이 순간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자기 스스로 지은 거짓된 자신을 허물어 버리고 당신께서 직접 새로 지어주시도록 우리 자신을 온전히 당신께 내어맡기라고 말입니다! 그와 같은 죽음과 부활의 과정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결코 단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끊임없이 반복해야 할 작업으로써주님 안에서 거짓 자아를 극복하며 참 자아를 찾아나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저희 수도회 창설 신부님께서는 성체성사 때 제병이 성령과 결합됨으로써 온전히 성체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그러한 점을 묵상하시고 면형무아(麵形無我)”라고 표현하셨답니다.

    그처럼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는 형상은 오로지 참으로 살아계신 주님 한분뿐이십니다그것은 바로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하느님의 힘이라고 열렬하게 선포하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혹시 우리가 세상의 힘있고 화려한 우상들을 쫓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또한 우리 안에 자기 스스로 만들어 놓은 거짓된 우상들이 있지 않은지 성찰하면서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주님 한분만을 온전히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기꺼이 그분께 맡겨드리도록 합시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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