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파스카의 여정 – 나해 사순 제2주일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21-02-28 09:05
조회
11080

파스카의 여정

 

 

    종신서원 10주년을 맞아 수도회에서 마련한 교육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지 어느덧 다섯 달이 지났습니다금세 한국에서의 생활에 다시 익숙해졌는데 다음 달에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다소 찹찹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하지만 미련을 버리고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서 잘 죽어야지 베트남에 돌아가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늘 십자가 앞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만남이 있으면 어김없이 헤어짐의 아픔을 겪어야 하고삶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에서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하기 위해선 그 한 가지를 제외한 다른 수많은 선택안들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받아들여야 합니다만약 헤어지고 포기하는 아픔을 피하려 한다면 새로운 만남과 선택의 기쁨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그처럼 우리네 삶은 죽음과 부활의 연속그 파스카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러한 점이 잘 드러납니다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처음 예고하시고 나서 당신을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마르 8,31-38 참조바로 다음에 위치하는데요아마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예고를 처음 듣고 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면서 꽤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깨우쳐주고 싶으셨을 테지요그래서 제자들을 타볼산으로 데리고 가셔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뒤에 맞이하게 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산은 고전적으로 하느님과 대면하는 장소로서 산꼭대기는 영적인 완성의 경지를 나타냅니다(탈출 3,1-15; 19,16-25; 1열왕 19,9-18;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멜의 산길』 등 참조). 산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커다란 수고와 인내가 필요하지요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과 합일을 체험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자신을 “침묵”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수련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예수님과 제자들은 그런 십자가의 과정을 통과한 다음에 타볼산 정상에서 영광스러운 부활을 체험하게 되는데요베드로 사도는 하느님 아버지를 대면하심으로 인해서 영광스럽게 빛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대면하고는 너무나 황홀하고도 두려운 무아지경” 속에서 무심결에 거기서 지내고 싶은 자신의 속마음을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부활의 영광에 그저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으시고지체 없이 산을 내려가시어 예루살렘을 향해서 길을 떠나십니다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골고타를 향해서 말입니다하느님께서 마련해놓으신 파스카의 기쁨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그 부활의 신비를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자신이 변화되는 데 따르는 고통이 두려워서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우리들에게주님께서는 용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2018년에 젊은이들을 위한 주교대의원회의를 마치시고 나서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여러분의 젊음을 최대한 활용하십시오먼발치에서 삶을 관조하지 마십시오행복은 안락의자가 아닙니다화면 앞에서 여러분의 삶을 허비하지 마십시오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마치 버려진 차량처럼 비참한 상태가 되지 마십시오주차된 차량처럼도 되지 말고자유롭게 꿈꾸고 좋은 결정을 내리십시오비록 실수를 할지라도 위험을 감수하십시오무기력하게 근근이 살아가거나 마치 구경꾼처럼 세상을 바라보지 마십시오진취적으로 나아가십시오여러분을 무력하게 만드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십시오그래야 여러분은 젊은 미라처럼 되지 않을 것입니다활기차게 살아가십시오최상의 삶을 위하여 여러분 자신을 내어 주십시오새장을 열고 밖으로 나가 날아오르십시오제발조기 퇴직자처럼 되지 마십시오.”(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143)

    이 말씀은 비단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층에게 공감되는 말씀일 것입니다오늘 제1독서를 보면하느님께서는 백세가 넘는 아브라함을 당신의 파스카 신비로 이끌어주시면서 그에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축복을 약속하셨지요그와 같이 우리가 주님과 함께 용기를 가지고 그 파스카의 여정을 충실히 걸어갈 때 우리 앞에 놓인 부활의 영광은 무한할 것입니다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새로운 영을 불어넣어주시어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한평생 그 파스카의 여정을 충실히 걸으신 예수님께서는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도 타볼산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느님 아버지를 대면하고 그분과 일치를 이루실 수 있으셨을 겁니다저희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창설자이신 무아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도 주님께서 당신께 마련해주신 십자가의 여정을 충실히 걸으시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셨답니다타볼도 좋고 겟세마니골고타도 다 좋아라! 어디든지 주 계신 데는 전화위복 선경일세!”(대월가우리도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허락해주시는 고유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면서 그와 같이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영광의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소리가 들렸고 바로 그 순간 모세와 엘리야는 안보이고 예수님만 제자들 곁에 계셨다고 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화려한 영광을 쫓지 말고 오직 우리의 참 빛이시며 참 영광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도록 합시다특별히 이 은혜로운 사순시기에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충실히 나누면서 그분께서 마련해주시는 그 역설적인 십자가의 신비에 기꺼이 동참한다면 부활절에 맞는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클 것입니다아멘.

전체 1,611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611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성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4.03.27 | 추천 0 | 조회 65
하느님의 사랑 2024.03.27 0 65
1610
내 말 안에 머무르면 – 사순 제5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4.03.20 | 추천 0 | 조회 153
하느님의 사랑 2024.03.20 0 153
1609
계명 실천 – 사순 제3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4.03.06 | 추천 0 | 조회 341
하느님의 사랑 2024.03.06 0 341
1608
예수님의 섬김 – 사순 제2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4.02.28 | 추천 0 | 조회 464
하느님의 사랑 2024.02.28 0 464
1607
개과천선 – 사순 제1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4.02.21 | 추천 0 | 조회 976
하느님의 사랑 2024.02.21 0 976
1606
열려라 – 연중 제5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4.02.09 | 추천 0 | 조회 2337
하느님의 사랑 2024.02.09 0 2337
1605
마음을 열고 믿음 –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하느님의 사랑 | 2024.01.31 | 추천 0 | 조회 3215
하느님의 사랑 2024.01.31 0 3215
1604
듣고 받아들임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하느님의 사랑 | 2024.01.24 | 추천 0 | 조회 3016
하느님의 사랑 2024.01.24 0 3016
1603
믿음과 확신 –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하느님의 사랑 | 2024.01.17 | 추천 0 | 조회 3666
하느님의 사랑 2024.01.17 0 3666
1602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 연중 제1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 | 2024.01.10 | 추천 0 | 조회 4201
하느님의 사랑 2024.01.10 0 4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