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사순 제1주일 (마태 4,1-11)

 

 

유혹의 정체

 

찬미예수님! 우리는 지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하여,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참회와 회개의 사순 제1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순 제1주일을 시작하며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았던 방해물 가운데 가장 큰 것 중의 하나인 유혹의 정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흔히 TV 광고 등에서 사람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을 ‘악마의 유혹’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유혹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입맛에 잘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유혹인지도 모를 만큼 미미하게 우리를 잡아당깁니다. ‘유혹’이라는 말 그대로 우리가 혹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유혹이라고 할 수가 없겠죠. 우리가 혹할 만한 것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번 사순 제1주간을 시작하면서 잘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혹할 만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약점이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영향을 받지 않지만, 그것에는 큰 영향을 받아 나의 의지를 잘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들이 여기에 속할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욕심에 근거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악마는 예수님을 세 가지로 유혹합니다. 하나는 배고픔, 하나는 안전, 하나는 부귀영화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든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늘 추구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막상 이러한 것들이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누구나 흔들리고 의지를 통제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더욱 당연하게 여겨지는 본능적인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외에도 성적인 욕구, 자식들의 성공과 안위, 주위사람들로부터의 인정 등 우리를 흔들리게 하는 것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유혹들이 오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많은 유혹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설 때,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을 늘 바르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 안에 어떤 유혹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가장 단순한 사실을 앎으로써 우리는 적잖은 유혹들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악마가 우리를 유혹하는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악마가 우리를 유혹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할 때, 과연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지, 또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인지, 아니면 하느님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기뻐할 일인지 늘 살펴야 합니다.

 

우리에게 유혹이 오더라도 선택은 자기 스스로가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한 잘못의 탓을 유혹자에게 돌리기보다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제 탓입니다.’하고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는 사순시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profile

 

 

엿장수가 꿈이였던 소년이,

오늘은 세상의 귀퉁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