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루카 5,27-32)

 

 

의인과 죄인

 

찬미예수님!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무언가를 결심하고 실천하려고 하면 꼭 떠오르는 말이 ‘작심삼일’이란 말입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3일이나 지났습니다. 그새 결심한 것들이 도루묵이 되었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이제 시작되는 사순 제1주일부터 조금씩 실천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올바로 실천할 때에, 우리는 그로 인해 어떤 대가를 받지 않더라도 어떤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거나, 때로는 내가 생각지도 않았는데 나의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누군가가 도움을 받았을 때, 우리는 알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행복감은 나의 보잘 것 없는 행동이 주님으로부터 의로움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늘 우리 스스로는 좀처럼 헤어날 수 없는 죄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을 미워하기 싫고, 늘 사랑하면서 살고 싶지만 삶은 맘처럼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스스로 싫어하는 죄를 반복해서 짓고, 또 다시 자책하며 나의 그 싫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감추고 포장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은 더욱 더 무거워지고 비밀이 많아지고 그만큼 우리 삶에 어둠이 드리웁니다. 이러한 모습을 생각하면 감히 주님 앞에 나서지 못할 만큼 스스로 죄인이라 여기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남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세리와 죄인들과 자리를 함께 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핍박한 반면, 왜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께 잔치를 베풀었을까요?

 

내 삶에 어둠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빛과 은총의 고마움을 좀처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내 삶의 어둠에 묻혀 좀처럼 주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다가 오시어 ‘나를 따라라’라고 하시며 우리를 그 어둠에서 꺼내 주십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느끼지 못한 고마움과 행복을 이 죄인들과 세리들은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우리는 의인이기도 하고, 죄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의인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셨던 대로 억눌린 이들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있고, 주님께로 초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를 따라라’하고 불러 회개시켜 주십니다. 레위처럼 우리가 지난 과거를 모두 버리는 일이 그리 유쾌하거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좀 더 자유로워지고자 우리의 죄를 성찰하고 참된 행복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직접 부르시고 함께 자리하시며 우리를 참 기쁨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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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장수가 꿈이였던 소년이,

오늘은 세상의 귀퉁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