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3. 강론

 

찬미예수님

 

오늘복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눈먼 바로티오매오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과 함께 예리코로 떠나실 때 길가에 있던 눈먼 바로티오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큰소리로 떠듭니다.

바로티오매오는 눈이 먼 거지 였습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하기에 힘든 사람이고, 온전한 제약 안에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거지라는 의미는 누군가가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모든 것을 남에게 의지 해야만 했던 바르티오 매오는 하나의 희망을 어디선가 듣게 됩니다. 주변사람들로부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쪽 저쪽에서 기적을 베푸는 자가 있으며 이제 곧 그 사람이 여기를 지나갈 것이라는 소문을 말입니다.

 

웅성~웅성~ 자신의 주변에 많은 이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소문으로 들었던 기적을 베푸는 이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 차린 바르티오매오는 다음과 같이 소리 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을 높이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것은 바르티오매오에게는 일상의 일이 되었습니다. 앞이 안보이고 늘 배가 고픈 상태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동물적인 본능으로 안 것입니다.

보통 이렇게 외치면 사람들은 빵 조각을 던져 주거나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을 텐데, 오늘 따라 사람들이 이상합니다. 바르티오매오보다 더 큰소리로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외치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호하기 시작합니다. 바르티오매오는 거기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은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며 소문으로 듣던 그 나자렛 사람이 맞다는 확신을 가지고 한 번 더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간절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지나치지 못하였습니다.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간절한 목소리는 언제나 늘 남에게 의지 하던 목소리 였음을 아신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그가 원하던 대로 자비를 베푸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를 불러 오너라"

 

예수님께서 아니 대단히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가 자신을 부른다는 말에 연민과 동정을 받는것에 익숙했던 바르티오매오는 처음으로 자신의 겉 옷을 벗어 버리고 익숙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그분에게 달려갑니다.

 

달려가긴 했지만 그분 앞에 서있는 바르티오매오는 아직 어둠의 상태입니다. 이 어둠의 상태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바르티오매오에게 다가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내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조금 나누어 주겠습니다. 또는 여기에 음식을 놓고 가니 드십시오' 라는 익숙한 대화가 아닌 생에 처음으로 나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게 그리고 생각해서 판단하게 하는 살아있는 질문이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는 간절한 바램으로 말합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처음부터 보지 못했던 이가 아니라 예전엔 볼 수 있었지만 어둠속에 갇히게 된 바르티오매오는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청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스승님이라는 단어에 잠시 집중하게 됩니다. 이 스승님이라는 단어는 선생님 (영어에서 teather) 라는 단어와는 다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죽음 이 후에 돌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외친 스승님 즉 라뿌니라는 단어가 이 단어와 같은 뜻을 가집니다. 주님이 아니라 나의 주님입니다.

 

바르티오매오는 결단의 순간에서 자신의 것 옷을 버리고 익숙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수동적인 받아 들임이 아닌 자신의 간절함으로, 다윗의 자손 보편적이 예언자 예수를 받아 들인것이 아니라 나의 주님을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에 오늘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이제 이 핵심이 지금 우리의 자리로 다시 돌아 옵니다. 보편적인 스승님이 아니고, 책속의 예수님이 아니라, 남으로부터 듣고 알게된 예수님이 아닌 스승님이, 책속의 예수님이, 남에게서 들은 예수님이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 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내게도 다가 올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처음으로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한 한 바르티오매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께서 내게 힘을 주십니다. 역사의 예수님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나의 주님이자 온전한 나의 주체가 될 때 나에게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그 구원은 세상유혹의 어두움과 시기 질투의 어두움에서 당신의 깊고 넓은 사랑을 보고 느끼고 알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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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반석 아가다 이영준 모이세 수사 신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