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24 강론

 

며칠 새 날씨가 참 따뜻해 졌습니다. 지난주만 해도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 모두가 힘들어 했는데, 일주일새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너무나도 따뜻해 졌습니다. 작년 이맘때 기억이 납니다. 신학원에서 겨울 방학 내내 추웠던 날씨가 반짝 영상의 기온을 되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짧은 사이 초봄에 활짝 피는 목련이 봄이 온줄 알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냈습니다. 그러나 그 따스함도 잠시 곧바로 몰아닥친 한파는 모든 것을 얼게 만들었습니다. 화려하게 자신을 뽐냈던 목련은 매우 놀란 듯 스스로를 봉오리 속으로 숨기려 했지만 그 사이 많은 꽃들이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목련이 참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어야 할 때를 모르고 잠깐의 따뜻함에 쉽게 꽃을 피어낸 목련이 미련하다 못해 우습기 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목련은 미련하게 아니라 미련하리 만큼 솔직했고, 자연스러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운 시기에 웅크렸다가 일정한 따스함을 만나면 바로 꽃을 피우는 솔직함과 자연스러움을 말이지요. 목련이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지금 피어도 될까? 아니 너무 빠른 거 아냐? 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목련을 생각하며 자연스러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엇일까? 따뜻해지면 피고, 추우면 지는 목련은 자연스럽게 피고 지고를 할 줄 아는데 하느님의 사랑인 우리 사람들은 그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어떻게 피고 지고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를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손과, 발과, 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시며 각각의 것들이 죄를 짓게 하거든 잘라 버리고, 빼어 던지라는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어렸을 적 이사를 할 때 모든 짐을 다 나르고 나서 아버님은 손수 가구의 수평을 맞추곤 하였습니다. 작은 나무토막을 가지고 이리 저리 재보신 후 필요 없는 부분은 잘라 내고 꼭 필요한 부분만을 사용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꼭 필요한 부분도 높이가 맞지 않거나 모양이 예쁘지 않으면 여지없이 톱이나 칼로 원하는 높이만큼 쳐내기도 하셨습니다. 목적은 단 하나 가구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 엇지요.

 

오늘 예수님도 잘라 버리고 빼어 던져 버리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창조 때에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인간이 그 자연스러움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자연스러움을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파괴가 한번으로 끝 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져오기와 내어 놓기를 할 수 있는 손의 자연스러움과, 오고 가기를 할 수 있는 발의 자연스러움 그리고 보기와 보지 않기를 할 수 있는 눈의 자연스러움은 눈으로 사랑을 보고, 손으로 사랑을 나누며, 발로 사랑을 전달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움은 인간의 의지로 보지 않아야 될 것을 보고, 가져오지 말아야 할 것을 훔쳐오며, 가지 않아도 될 곳 가는 것으로 눈과 손 그리고 발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자연스러움은 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욕구가 가리키는 대로 한 가지 기능만을 즉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 중에 보는 것만을, 내어 놓음과 가져 오는 것 중에 넘치게 가져 오는 것만을,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 중에 움직이자 않는 것만을 행 하게도 된 것입니다. 이렇게 왜곡된 의지적인 행동과, 욕구에서 오는 편협한 행동을 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놀라운 능력을 잃어 버릴 수도 있게 됩니다.

 

소금은 짭니다. 짜기 때문에 자신을 모든 것을 녹여서 다른 음식을 맛깔나게 합니다. 그런데 소금이 짠맛을 잃는 다고 합니다. 소금의 색과 모양 형체는 남겠지만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금이 됩니다. 짠맛과, 색, 모양이 하나를 이룰 때 자연스럽게 음식 맛을 맛깔지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손이 좋은 것만을 가져오게 하고 내어 놓지 않을 때, 우리 발이 네게로 가지 않고 네가 내게로 오기만을 기다릴 때, 우리의 눈이 내게 좋은 것만을 보고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회피하게 될 때,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버리고 부자연스러움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앞서 목련 꽃의 비유를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살면 미련해 보이기도 합니다. 부족해 보이기도 하고, 좀 모자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련꽃은 후회 없이 자신을 모든 것을 또한 자연스럽게 털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한 해가 지나고 그 때가 돌아오자 아름다운 꽃을 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께서 자신과 이웃에게 멋진 양념이 되라고 부어 주신 사랑의 짠맛을 잃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삶의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울 때 그분의 사랑 안에서 매일 매일의 아름다운 목련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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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반석 아가다 이영준 모이세 수사 신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