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월요일(요한 12.1-11)

 

 

+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은 베타니아의 잔치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잔치에서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립니다. 그러나 그 행동을 보고 있던 이스카리옷 사람 유다는 마리아의 이러한 행동이 낭비라며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마리아의 행위를 비난합니다.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은 한 데나리온 이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라는 돈은 노동자들의 일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큰 액수의 돈입니다. 그 정도의 금액이면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평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자선을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을 본다면 유다의 말이 어쩌면 더 합리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합리적인 생각을 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마리아의 극진한 사랑만 보고 계십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당신에 대한 이 극진한 사랑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자신이 늘 같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마리아를 옹호하십니다. 마리아의 행동에 담긴 그 사랑의 의미를 보시고 마리아의 마음을 받아주신 것입니다.

누구나 상대에게 선물이나 대접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나 값비싼 것들은 상대에게 쉽게 내어놓지 못합니다. 만일 그것을 내어줄때는 상대가 정말 소중하게 사용하거나 아껴주기를 바라고 그것을 통해 내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상대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자신이 가진 정말로 소중한 것을 주면서도 무엇을 내어놓든 그것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값진 모든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사용합니다. 마리아의 사랑은 자신이 준 것들을 계산하지 않는 사랑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사랑은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릴 정도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녀에게 남들이 나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체험했기에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그분께 아낌없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서슴지 않고 내놓을 수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혹시나 자신의 것을 예수님께 내어놓으면서 주저하거나 이것을 했으니 무엇을 해주세요라고 계산하거나 예수님과 거래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예수님을 위해 내어놓기 보다는 예수님께 자꾸 무엇인가를 달라고만 하면서 조르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만일 마리아처럼 깊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체험이 없어서 우리가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지 못한다면, 우리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내어놓으시는 그 사랑의 은총에 힘입어,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을 수 있는 깊은 사랑의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