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사도들의 모후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요한 19,25-27)

 

 

  교회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시는 성모님

 

미예수님! 우리는 5월의 첫 토요일인 오늘 성모님의 달을 맞이하여 성모 신심 미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날 참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계십니다. 이런 사실은 레지오 쁘레시디움들의 이름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사도들의 모후로서 교회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계시는 성모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제자 요한에게 성모님을 맡기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들은 허투루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허튼 소리를 하겠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는 평소에도 허투루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죽음을 직전에 두고 하신 말씀들은 특히 더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요한에게 성모님을 맡기시는 말씀입니다. 이 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굳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앞두고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성모님의 아들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성모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 한평생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예수님께 드렸던 그 사랑과 보살핌, 관심과 정성을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전해주라는 예수님의 유언인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 모두가 성모님의 아들 딸로서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와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는 가장 존경해야 할 대상입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느 가정에 아버지가 없거나 어머니가 없다면 그 빈 자리는 대단히 커서 다른 가족들이 그 자리를 채우려고 해도 부족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성모님의 역할이 그리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하신 분께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육신을 취하시어 제자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분께서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 이제 그전처럼 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자들이 마치 아비를 잃은 어린 아이들처럼 절망하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든든한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성모님을 항상 자신들의 성찬 공동체 안에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특별히 공경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신 분이시라면, 성모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하늘과 연결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 모두에게 성령이 내려오시기 훨씬 전에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에서 해방되시고 하느님을 잉태하셨던 분, 그분께 오늘 나의 보잘 것 없는 작은 정성을 봉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