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요한 6,1-15)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 나눔

 

 미예수님! 오늘 복음 말씀은 꼭 예수님께서 얼마 안 되는 빵과 물고기를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먹이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최근에 여러 신부님들은 다른 설명들을 하십니다. 지난 김수환 추기경님의 장례미사 때에, 사제단 대표로 고별사를 낭독하셨던 최승룡 신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갑자기 펑 하고 터지면서 산처럼 솟아오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 나름대로 한 번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님이 먼저 당신 도시락을 옆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이를 보고 너도 나도 감춰 두었던 것까지 다 꺼내가지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자기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를 테면 이 복음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초자연적 기적 현상이 아니라 바로 나눔이 일으키는 엄청난 변화라는 것이죠.

 

  이러한 점에서 오늘 복음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의문점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갖고 있었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여러분들은 이 대목이 자연스럽게 여겨지십니까? 엄청난 대식가가 아니고서야 어른도 아닌 어린 아이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혼자 먹으려고 가지고 왔을까요? 여러분들이 한번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혼자 먹는다고 생각해 보시죠. 그것도 10살 남짓한 어린 시절에 말입니다. 어린 아이가 혼자 먹는 양치고는 너무 많다고 생각되지는 않으십니까?

 

  또 복음은 이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 먹은 사람의 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되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당시 유대 문화 안에서 사람의 수를 헤아릴 때에 여자와 아이는 제외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어떤 한 가정, 곧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이 산에 올라왔다고 한다면 이 가정의 식구가 몇 명이 되든 숫자는 한 명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그 집안의 종들은 아예 숫자에 끼지도 않았죠. 이렇게 따지면 아마도 실제 그 수는 오천 명이 아니라 오만 명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 규모는 아마도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가득 메운 정도의 규모가 아닐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것인데, 예수님은 호수를 건너 산에 오르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큰 호수를 건너고, 산을 올라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길을 떠난 것이라면, 그리고 온 가족이 다 함께 길을 떠난 것이라면 정말 먹을 것을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을까요? 어린 아이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나 가지고 있을 정도였는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들을 아시고, 필립보를 시험하십니다. 나눔의 기적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사람들이 먹어야 하는 빵의 양만을 생각하는 필립보는 그 해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신 뒤에 어린 아이의 음식을 나누었고, 이를 본 사람들은 서로 각자 싸온 음식들을 함께 나누어 먹지 않았겠습니까? 어쩌면,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 혹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앉은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자리에 앉아 이미 음식을 나누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나눔은 단순히 빵만 나눈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마음이 열리는 것이죠. 오늘 복음 말씀이 전하는 기적은 닫혀 있는 마음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 나눔을 통해서 말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들도 한번 나누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나눈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주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다른 이에게 받는 것도 의미하는 것이죠. 즉, 나눔은 주고 받는 것입니다. 주어진 것이 많든 적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함께 나누는 일이 얼마나 마음을 꽉 차게 하는지 한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