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요한 14,6-14)

 

 

느님을 뵙는 기쁨

 

찬미예수님! 오늘은 부활 제2주간 화요일이자, 12사도 중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12사도 중 야고보는 두 명입니다. 한 명은 제베대오의 아들인 야고보이고, 또 한 명은 알패오의 아들인 야고보인데,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는 흔히 소(小) 야고보라고 부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오늘 강론을 하기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느님을 뵙고 싶습니까? 뵙고 싶다면 왜 뵙고 싶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하느님을 뵙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살면서 하느님을 눈으로 뵌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존재하심을 알고 있고, 또 믿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창조주 하느님께서 존재하심을 알고 있었고, 또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지 못했습니다.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하느님을 뵙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를 통틀어 유일하게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모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모세의 권위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도 없고, 뵙게 해달라고 감히 청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요한 14,8)하고 청합니다. 필립보 이전에는 그 누구도 이런 청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청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더 이상 하느님을 보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필립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 14,8) 필립보는 하느님을 뵙고 무엇을 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뵙고자 할 때에 왜 뵙고자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보는 것 자체가 목적인지, 아니면 하느님을 뵙고 성취하고자 하는 다른 목적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필립보가 이런 청을 드리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그리고 오늘 아버지와의 관계를 드러내놓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우리는 필립보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 필립보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요한 14,11) 육신을 취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셨고, 그분을 믿는 그 믿음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뵙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습니다. 물론 먼 훗날에는 우리가 그분을 온전히 뵙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완성을 향해 계속 달려가야 하는 이 세대에,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되살아나시어,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신”(1코린 15,3-5 참조)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뵙는 기쁨을 누립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뵙는 이 기쁨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이제 곧 모시게 될 성체를 통해 주시는 이 기쁨으로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