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 방송 일을 했던 저는 연예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서울예술대학에 입학한 이래로 저의 이력을 알게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을 가장 많이 합니다. ‘어떤 연예인 봤어요?’ 이 질문은 수도원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싸인 받았어요?’입니다. 유명 연예인을 만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싸인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만났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싸인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자랑거리로 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표징이 어떤 것들인지 말씀하시는데요, 이 표징이라는 단어는 영어성경에서 싸인(sign)’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싸인, 즉 표징을 요구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확인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 하듯이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이미 확인되신 분입니다.(로마 1,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앞선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기적이 마귀의 힘을 빌려한 것이라며 수군거리기만 하고 예수님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이러한 기적을 보여주셨다면 가톨릭 신자들이 엄청 많이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표징을 보고나서야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별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남방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온 이유는 솔로몬이 어떤 표징을 보여주어서가 아닙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혜는 이렇다.’하고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한 것 또한 요나가 어떤 기적을 보여주어서가 아닙니다.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지낸 요나는 그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설교로써 니네베 사람들을 회개시켰습니다. 우리가 솔로몬과 요나를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눈에 보이는 특별한 기적을 통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주신 지혜설교’, 다시 말해 말씀의 힘으로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예수님 또한 오늘 복음에 앞서서 사람들에게 가장 완전한 기도라고 일컬어지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고, 이후 벙어리 마귀를 내쫓는 놀라운 일을 보여주신 뒤에 예수님을 베었던 모태와 예수님을 먹인 젖은 행복하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17세기에 등장한 철학사조인 인식론에는 경험론과 합리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지식은 자연세계에 대한 경험에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관념은 물질이 감각을 자극함으로써 생겨난다.’라는 주장을 중심으로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들 모두는 바로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경험으로 얻어진 결과들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안에 그 결과를 가두어 두는 것 밖에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러한 경험론자들, 합리론자들이 생각납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이 보여주는 어떤 표징을 보고나서야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정해 놓은 그 범주 안에만 머무르게 하는 한계를 정해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해 놓은 범주 안에서 예수님이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판단하고 종국에는 쉽게 떠나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시무종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인식에서 벗어나는, 다시 말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무척 많이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정해 놓은 어떤 범주 안에 예수님을 정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이신 예수님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이해를 뛰어 넘는 어떤 일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곁에 계셨고, 말씀을 통해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은 말씀 그 본질이기 때문에 솔로몬보다도, 요나보다도 더 큰 분이십니다


 흔히 정말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랑, 정의, 평화, 영원, 선 등이 되겠지요. 이러한 것들은 언어로는 표현되었지만 그 실체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추상적인 개념들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선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그것들을 이미 우리 안에 함께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수 고() 신해철 씨의 노래 중에 ‘Here I stand for you’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 신해철 씨는 의미심장한 내레이션으로 이 노래를 마치는데요, 오늘의 복음을 묵상하며 저는 이 노래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무척 많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하루를 보내시며 과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지, 그리고 과연 나는 예수님을 확인하기 위한 어떤, 표징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