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 영주는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에 당화하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나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몹시 혼란스러웠기 때문 일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당황하였다.’ 또는 두려워하였다.’는 단어는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뜻하는 의미가 아니라, 유령이나 귀신을 보았을 때 두려워하는 정도의 놀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헤로데는 놀랐던 것일까요? 헤로데는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헤로데는 요한이 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득권과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요한을 살려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단죄하러 온 옛 예언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소문을 너무나 많이 들었기에 마음한편으로는 일종의 호기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일으키는 기적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듯이 헤로데는 자신의 권력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했기에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기 보다는 본능적인 욕구의 삶을 더 추구했던 것입니다. 잘못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살아 갈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마음한편으로 예수님까지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살면서 반복된 죄를 짓고 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은 빠져나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고,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대중매체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죄가 밝혀지더라도 그것을 부인하며, ‘몰랐다. 기억나지 않았다.’등으로 도망가기 바쁜 사람들을 말입니다. 창설 신부님은 이같이 양심 없음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욕(邪慾)으로 양심이 흐리면, 죄악으로 캄캄하도다. / 양심은 상선벌악(賞善罰惡)을 외치나니, 이것이 양심의 가책이로다. / 양심의 가책에도 불구하고 사욕에 사로잡혀 악을 하면 역천패륜(逆天悖倫)이요, 천지정기(天地正氣)와 맞서는 죄악이니, 오호(嗚呼)! 인생이란 무상한지고!”

 

   이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나 하늘의 이치를 어기고, 하늘의 뜻과 맞선다.’는 뜻으로 양심가책에도 사욕을 부리면 하느님과 맞서는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양심이 가책을 받으면 바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며, 죄를 지었더라도 그 즉시 회개하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생명을 얻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양심을 통해서 자연법인 하느님의 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릴 줄 안다는 말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하느님의 법을 발견한다면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 하루 헤로데처럼 자신의 사욕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양심불을 스스로 꺼버리고 있는 행동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성찰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양심을 가지고,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보이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