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22주일 (루카 14,1.7-14)

 

 

겸손

 

  옛날 6세기 경에 교황을 역임했던 그레고리오 1 교황은 죄에 대해 분류하면서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7가지 죄를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흔히 칠죄종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교만, 대식,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이라고 꼽을 있는 죄는 단연 교만입니다. 다른 죄들은 모두 특정한 대상이나 방법을 통해서 짓게 되지만, 교만만큼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지을 있고, 심지어는 우리가 쌓는 덕이나 , 의로운 행위들을 통해서도 지을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고, 식별해내기 어려운 죄가 교만입니다.

  그런데 그레고리오 교황은 칠죄종에 대해 말하면서 이것과 반대되는 일곱 가지 덕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것은 겸손, 관대, 정결, 인내, 절제, 굳셈, 용서인데, 덕들 가운데에서 단연 으뜸은 겸손입니다. 교만에 반대되는 덕으로서의 겸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부터 비롯하여 많은 교부들이 칭송해 마지 않던 덕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겸손해야 하는지 굳이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해야 겸손할 있는가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잔칫집에 놓여 있는 윗자리와 끝자리를 이야기하시면서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겸손과 교만의 중요한 구분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초대받은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바로 초대한 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실을 잊어버릴 우리는 교만해지는 것이고, 우리가 사실을 명심할 때에 우리는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겸손하려고 해도 내가 조금은 겸손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다시 교만에 빠지고 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참된 겸손을 이룰 있을까요?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겸손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겸손은 진정한 나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합니다. 내가 가진 것과 나를 동일시하거나, 내가 이룬 것과 나를 동일시할 때에 우리는 참다운 나에 대해 오해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 하느님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나의 존재를 잊고 살아갈 때에 우리는 교만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먼지에 불과한 나를 바라볼 때에, 어떤 사람은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우리는 바로 거기에서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 교부들은 겸손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겸손은 성령께서 머무시는 자리라고도 하였습니다.

   영광을 차지하려고 하지 말고 영광스럽게 주시기를 청하십시오. 욕심은 비우되, 희망은 잃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떠나 하느님 앞에서 발가벗겨진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 것입니까? 하지만 하느님께서 초라하고 추한 나를 불러 세우시고, 아끼시고, 보살피시고, 키우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이 겸손의 시작입니다.



(일본어 역)



C年 年間第22主日(ルカ141.714節)

 

 

 昔、6世紀頃に教皇を(れき)(にん)したグレゴリオ1世はあらゆる罪の源になるものを7種類に分類しました。これは普通「7つの罪源」と言われるもので、(ごう)(まん)、食欲、(しっ)()(ふん)()(しき)(よく)(どん)(よく)(たい)()すが、その中でも一番悪いされているのが傲慢です。他の罪は特定のや方法を通じて犯しますが、傲慢だけはどのような方法ででも犯してしまい、場合によっては私たちが、正しい行為を通しても犯すことができるからです。それほどに、傲慢は私たちにとってするのが難しく、しにくい罪なのです。


 ところで、グレゴリオ教皇はこの7つの罪源」について言及する一方でこれと反対の「7つの(とく)(もく)」についても述べています。それは謙遜、(かん)(だい)(てい)(けつ)(にん)(たい)(せっ)(せい)(けん)()、許しですが、この徳目の中で最高のものは謙遜です。傲慢の正反対に位置する徳としての謙遜は、イエス様の教えをはじめ、多くの教父たちが(たた)えてやまなかった徳です。ですので、キリスト者であればなぜ謙遜で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についてわざわざ尋ねる必要はありませんが、問題はどうすれば謙遜であることができるかです。

 

 今日の福音で、イエス様は招待された(こん)(えん)における(じょう)(せき)(まっ)(せき)について話され、自分を「高ぶる者は低くされ、へりくだる者は高められる」とお教えになります。ここで私たちは謙遜と傲慢を区分する重要な点に気づきます。それは招待された者に栄光を与えるのはまさに招待した者だということです。私たちがこの事実を忘れた時傲慢になり、心にとめる時謙遜になるのです。しかし、私たちがいくら謙遜であろうとしても、自分で「少しは謙遜するようになったな」との考えが浮かんだ瞬間、傲慢になってしまいます。では、どうすれば本当の意味で謙遜になれるのでしょうか?そのためには、私たちは謙遜についてよく知っていなければなりません。


 謙遜は本当の自分に対する(にん)(しき)から始まります。自分が持っているものや自分が成し遂げたものと自分を(どう)(いつ)()する時、私たちは本当の自分に対して()(かい)し始めます。神様が創造された多くの人々の中の一人に過ぎない自分、そして神様がいらっしゃらなければ一日さえも生きていくことができない自分を忘れた時、わたしたちは傲慢になり始めます。このように(ちり)に過ぎない自分を(かえり)みると、人によっては自らひどく()じいってしまいますが、むしろ私たちはそういう時こそ神様のすばらしい愛を見つけることになります。それで、昔の教父たちは謙遜があるところに愛もあると言いましたし、また謙遜は聖霊が留まっておられるところだとも言いました。

 

 栄光を求めようとしないで栄光を与えてくださるよう求めてください。(ほっ)する心、望む心は(から)にしつつ、同時に希望は失わないでください。あらゆる物から離れ、神様の前で身ひとつになった自分の姿はみすぼらしいでしょうか?いいえ、神様はそのみすぼらしくもみにくい私を()()せ、大切にし、見守り、育て、死ぬまで愛してくださることを忘れないでください。これが謙遜の始まり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