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주님 승천 대축일 (사도 1,1-11 / 히브 9,24-28;10,19-23 / 루카 24,46-53)

 

오늘은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하늘로 오르신 것을 크게 기뻐했습니다. 여러분도 기쁘십니까? 기쁘다면 기쁜 것일까요? 물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것이 우리에게 기쁜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모든 질문의 답은 성서 말씀 안에 있습니다. 성서 안에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가 신앙의 해를 지내고 있는데, 신앙의 해를 선포하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어야 내용을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람 안에 있는 지성소인 마음이 은총으로 열려 깊이 바라보는 눈을 지니고, 선포된 내용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임을 깨달아야 한다.”(믿음의, 10) 쉽게 말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알기만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마음 깊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깊이 되새겨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승천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기 전에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말씀 중에 예수님께서는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인데, 이 분을 가리켜 예수님께서는 높은 데에서 오는’이라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제자들은 힘을 얻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게 되었을, 제자들이 무엇을 있게 되었습니까? 선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할 있게 것입니다. 즉, 주님의 승천을 시작으로, 성령께서 오시리라는 희망이 생겨났고, 그로 말미암아 선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가지는 오늘1독서에서 찾아볼 있습니다. 사도행전 역시 루카에 의해 기록된 것이어서, 사도행전의 머리는 루카 복음의 마지막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도들의 선교가 주님의 승천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얀 옷을 입은 사람, 곧 천사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이 말을 들은 사도들은 그때부터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 재림에 대한 희망은 교회 공동체의 절망을 기쁨으로 바꿔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희망은 그대로 공동체 전례에 남아, 지금까지도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노래하면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하고 외치며, 사제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나서“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희망에 대해 오늘2독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오늘 우리는 주님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시리라는 희망,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제가 여러분들 사람 사람에게 1억원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1억원보다 값진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기다림이 우리를 더욱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일의 증인’(루카 24,48)이라고 한다면, 주님의 승천이 누구에게보다도 기쁜 일이 것입니다.



(일본어 역)


主の昇天ミサ

 

 今日は、主が天に昇られた主の昇天の祝日です。今日の福音にあるように、弟子たちはイエス様が栄光のうちに天に昇られたことを非常に喜びました。皆さんもうれしいでしょうか。うれしいならば、なぜうれしいのでしょうか。もちろん、イエス様が天に昇られたからです。では、ここで質問です。イエス様が天に昇られたことが、私たちにとってなぜ喜ばしいことなのでしょうか。イエス様が天に昇られたことが、私たちとどんな関係があるのでしょうか。

 

 質問に対する答えは全部聖書の中にあります。聖書の中に真理が込められているからです。今、全世界が「信仰年」を迎えていますが、「信仰年」を宣言するにあたって教皇ベネディクト16世は次のように述べました。“信じるべき内容を知るだけでは不充分です。人の真の聖なる場である心が、恵みによって開かれ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す。恵みは、目に表から見えないものを見ることを可能にし、神のことばが告げられたことを悟らせます”(『信仰の門』10。簡単に言うなら、神のことばを知るだけではなく、恵みによって心深く悟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ですので、私たちは今日の第一、第二朗読と福音を深く振り返る必要があります。

 

 主の昇天と私たちとの関係についての答えを見出すために、まず私たちはイエス様が天に昇られる前に述べられたことばに耳を傾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ことばの中でイエス様はひとつの約束をなさいました。それは、父が約束された方を送っ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ですが、この方を指してイエス様は‘高いところから来る力’とも述べられます。したがって、その時から弟子たちはその力を得ることを望んでいました。そして、その力を得られたとき、弟子たちは何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か。それは、宣教です。主のことばを世に伝え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つまり、主の昇天を始めとして、聖霊が来られるという希望が芽生え、それによって宣教が始まったのです。

 

 もうひとつのことは、今日の第一朗読の中に見出すことができます。使徒言行録もルカによって記録されたので、使徒言行録の初めはルカ福音の最後とつながっています。つまり、使徒たちの宣教は主の昇天から始まるということです。

 ところで、ここである別の人物が登場します。それは白い服を着た二人、つまり天使です。天使たちはこのように言います。“あなたがたから離れて天に上げられたイエスは、天に行かれるのをあなたがたが見たのと同じ有様で、またおいでになる”(使徒言行録111節)。このことばを聞いた使徒たちはそのときから一緒に集まって祈り、主が再びお出でになるのを待ちました。主の再臨に対する希望は教会共同体の絶望を希望に変えるのに充分でした。そして、その希望はそのまま共同体の典礼として残り、今でも私たちは信仰の神秘として、“主の死を思い、復活を告げ知らせよう。主が来られるまで”と唱えています。司祭は主の祈りをささげ、“私たちの希望、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が来られるのを待ち望んでいます”と祈ります。

 

 この希望については、今日の第二朗読で述べられています。“公に言い表した希望を揺るがぬようしっかり保ちましょう。”今日、私たちは主の昇天によって今後聖霊が私たちに降って来るという希望、そして主が再び来られるという希望をもつようになります。‘来週、私は皆さんお一人お一人に一億ウォンを差し上げます’と言ったならば、皆さんは早くその日が来ないものかとそわそわしながら待つことでしょう。イエス様は一億ウォンよりももっと価値のあるものを私たちに約束なさいました。それを待つ間、私たちは喜び、待ち遠しくなります。福音は喜びの知らせです。今日、イエス様が話されたように、私たちが‘これらのことの証人’(ルカ2448)であるならば、主の昇天が他のだれよりも喜ばしいことになるで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