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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 주님공현대축일 후 토요일

1독서: 1요한 5,14-21 / 복음: 요한 3,22-30

 

+.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특별히 오늘 복음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 시기를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는 이제 세례자 요한의 사명이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선포하였지만,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경계하며 그 상황을 요한에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친구로 고백하며,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자신은 작아져야 한다고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은 작아져야 한다고 고백한 요한은 인류의 가장 큰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라고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까지도 요한을 인류의 가장 큰 인물로 기억하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해마다 624일을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624일은 하지와 연결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이기도 하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날이 점점 짧아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의 출현으로 자신은 점점 작아져야 하는 것에 착안해서 교회는 상징적으로 세례자 요한의 축일을 624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 세례자 요한의 고백을 묵상해 봅시다. 언행과 삶이 일치했던 요한의 모습과 신랑의 친구로 고백하며, 기쁘고 거룩하게 소멸되어가는 요한의 모습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 봅시다.

 

   어제 우리는 수도회 전체 생활나눔을 통해 죽음의 죽음이라는 한해를 살아갈 생활양식 얻었습니다. 창설신부님께서는 죽음의 죽음이 되면 죽음을 앞둔 모든 날이 희망가득하고 복된 날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의 죽음을 통해 면형으로 향하는 삶, 우리는 이 삶을 요한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랑의 친구로 고백하면 기쁘게 소멸되어간 요한의 삶은 죽음의 죽음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마음에 간직한 채 한해를 살아간다면 우리는 기꺼이 죽음의 죽음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죽음의 죽음을 통해 아주 작은 면형이 되어 소멸되겠지만, 이 면형이 누군가의 영혼을 살리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역동하실 수 있도록 그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보다 크고 값진 일은 우리의 삶에 다시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