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6px-Rom,_Vatikan,_Basilika_St._Peter,_Die_Taube_des_Heiligen_Geistes_(Cathedra_Petri,_Bernini).jpg




공동체 원장님과 형제들의 배려로 12일 집에 갔다 왔습니다. 늘 기도가 부족하지만, 집에 가면서는 저의 기도가 더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회헌에 나와 있듯이, 공동기도 밖에서도 개인 기도로써 주님을 지향해야 하지만 막상 집에 가니 몸의 편안함에 빠져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혼의 관심보다는 몸의 관심을 더 가짐을 봅니다. 복음의 군중들도 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육적인 배고픔을 해결해달라고 합니다.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과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이 생명의 빵이며, 나에게 오면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군중들은 육체의 배고픔을 말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워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우려면, 먼저 영혼의 배고픔과 갈증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한끼만 굶어도 육적인 배고픔을 느끼는데, 예수님과 만나는 기도가 부족하다면 영혼의 굶주림을 느낄 것입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강론을 준비해야 해서 다시 반성을 하고, 요한 복음을 보았습니다. 다행히 영혼의 목마름을 느끼고 예수님께 간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요한 737절 부터의 말씀으로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우리가 부족함을 느끼고 예수님께 나아간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성령을 받지만, 이에 반대로 독서에서는 성령을 거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으로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빵인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선포하는 스테파노에게 돌을 던져 죽입니다. 성령을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자신의 죽음을 무릎 쓰고, 예수님을 선포합니다. 결국 그는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했던 그는 우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는 자신을 박해하고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기도하면서 죽습니다. 성령과 함께 한다면, 우리도 스테파노와 같이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처럼 영혼이 부유하다면, 성령을 거역하고 육의 행실을 따를 것입니다. 영혼의 갈증으로, 성령과 함께 한 우리의 실천은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용서와, 그를 위한 기도일 것입니다. 성령님께 도움을 청하는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복자 슈브리에 신부님의 하느님의 영을 간구하는 기도로 마치겠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간구하다

 

오 나의 하느님,

저에게 당신의 영을 주소서.

이 기도야말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매일 매 순간 드려야 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영,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성령에서 생기를 얻는다면 모든 것을 갖는 것이며,

천상과 지상의 모든 부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주실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보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고자 하는 실제적인 지향을 가지고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최선을 다하겠다는

실제적인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느님께 간구합시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간구하는 일을 멈추지 맙시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