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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복음서에서는 요셉의 마음에 대한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요셉은 아내의 잉태를 보고 놀랐고, 마음을 졸이며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는 한 가지 해결책으로 남몰래 파혼하기로 결정합니다. 파혼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하느님께서 천사를 통해 개입하십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천사는 그에게 하느님의 뜻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이고, 아기 예수에 대한 아버지의 책임을 지라고 하십니다. 그는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자관계를 받아들려고 하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에 받아들입니다. 요셉이 그분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의로움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의 의로움은 근본적으로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충실함을 뜻합니다. 요셉의 의로움은 일차적으로 마리아와의 관계에 충실함으로써, 마리아를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립니다. 그리고 요셉의 의로움은 결국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인 하느님과의 관계에 충실함, 곧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헤로데의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사흘 동안 이나 헤매이는 어려움을 겼었지만, 단순하게 이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었기에, 순응하고 받아들이십니다. 어려움에 있어서, 불평이나 해명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성모님과 예수님을 돌보아 주십니다.


2독서의 아브라함도 우리에게 의로움에 대해 알려줍니다. 아브라함도 성요셉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과의 관계에 충실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고령인 나이에 고향을 떠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또 고령의 아내인 사라에게서 아들을 주신다는 말씀을 또한 믿었습니다. 그는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을 때, 모든 희망이 무너졌을 때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그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요셉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뜻은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극한 상황들입니다. 하지만 요셉과 아브라함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충실하였기에,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의로움으로 보아주셨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첫 번째가 아님을 자주 보게 됩니다. 나의 어려움, 이슈가 되는 뉴스에 마음이 가고 있음을 봅니다. 요셉 대축일에 요셉 성인은 우리에게 하느님과의 관계의 충실함에 대해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려움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요셉과 아브라함처럼 어려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있도록 기도하는 하루를 보내야 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