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5 연중 제 29주간 목요일(루카 12, 49-53)

 

찬미 예수님!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주님의 이 말씀은 당시의 문화와 전통에 충실한 이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분의 새로운 복음은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토라와 율법으로 하느님을 이해하고 전통에 충실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파격 그 자체였고, 어떨 때는 신성모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른 다는 것. 그리고 그의 가르침인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사는 것에는 참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부자 청년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때로 가진 것을 다 팔아자신을 따를 것을 원하십니다. 또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따르겠다는 제자에게는 죽은 이는 죽은 이에게 맡기고,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지 말고 즉시따를 것을 명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 그리고 지금까지 추구했던 가치를 뒤집어 엎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이 주신 불은 우리의 마음에게 계속 분열과 불안을 일으킵니다. 당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로 우리 삶에 복된 일이진 자꾸만 질문하게 합니다. 이러한 의심은 내적으로 타협과 검증과 포기, 그리고 다시 도전과 이해와 깨달음과 확신으로 나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합니다.

 

이러한 의심은 이러한 분열은 인간이 지닌 본성을 고려한다면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안정과 만족과 더 나은 삶은 원하는 것이 본능으로 내재해 있습니다. 이 사회가 추구하는 인간상도 그러합니다. 이러한 삶을 넘어서거나 부정하려만 그만한 내공과 그만한 확신이 동반되어야 가능합니다.

 

1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그분을 정확히 알고 믿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단풍이 곱습니다. 바람이 차기도 하지만 색색으로 변해가는 산하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증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직접적 방법인 기도 외에 간접적 방법 중에 책과 자연과사람. 그중에 자연과 책이 참으로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이 가을에 하느님의 작품 속으로 그 성령 속에 침잠해 보시길. 그리고 그분 밖에 구원자가 없음을 다시 확신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