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0 연중 제 14주간 화요일(마태 9, 32-38)


찬미 예수님!


고의(古意)

-정약용


洌水流不息 (열수류불식) 한강수 흘러흘러 쉬지 않고

三角高無極 (삼각고무극) 삼각산 높아높아 끝이 없는데

河山有遷變 (산하유천변) 산하는 차라리 변할지언정

朋淫破無日 (붕음파무일) 당파짓는 무리들 깨부실 날이 없네

一夫作射工 (일부작사공) 한 사람이 중상모략을 하면

衆喙遞傳驛 (중훼체전역) 뭇입들이 너도나도 전파하여

詖邪旣得志 (피사기득지) 간사한 말들이 기승을 부리니

正直安所宅 (정직안소택) 정직한 자 어디에 발붙일 것인가


孤鸞羽毛弱 (고란우모약) 봉황은 원래 깃털이 약해

未堪受枳棘 (미감수지극) 가시를 이겨낼 재간이 없기에

聊乘一帆風 (요승일범풍) 불어오는 한 가닥 바람을 타고서

香香辭京國 (향향사경국) 멀리멀리 서울을 떠나리라네

放浪非敢慕 (방랑비감모) 방랑이 좋아서는 아니로되

濡滯諒無益 (유체량무익) 더 있어야 무익함을 알기 때문이야


虎豹守天 (호표수천) 대궐문을 호표가 지키고 있으니

何繇達衷臆 (하요달충억) 무슨 수로 이내 충정 아뢰오리

古人有至訓 (고인유지훈) 옛 분이 교훈 남기지 않았던가

鄕愿德之賊 (향원덕지적) 사악한 이들은 덕의 적이라고.


이 글은 다산 정약용이 귀향살이 가기 직전에 지은 글입니다. 어느 때이건 중상모략과 진실된 이나 의인을 박해하는 이들의 무리는 있는 법이지요. 정약용이 이 시의 제목을 고의, 즉 옛 뜻이라고 지은 점이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옛 성현들, 곧은 선비들의 뜻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그러자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됩니다. 군중들이 놀라워하자 바리사이들이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합니다.

두 마리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은 적이라고, 아니면 내가 싫어한다고 규정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밉습니다. 무엇을 해도 싫습니다. “고운 놈 미운데 없고, 미운 놈 고운 데 없다.”라는 속담이 틀리지 않습니다. 수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를 닦겠다는 이들이 모였지만 누가 미워지면, 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는 패거리가 형성되면 아주 지저분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한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나, 작은 일을 부풀려 모함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하느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살겠다는 사람들이 도리어 그것을 저해합니다. 선을 악으로, 정의를 불공정으로 뒤바꿉니다. 그러고서 어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지 참 갑갑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고을과 마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허약한 이들까지 고쳐주십니다. 목자 잃은 양떼같은 사람들을 보시며 추수할 일꾼이 적은 것을 한탄하십니다. 일꾼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플러스 사고방식으로 살아가야하겠습니다. 누구든지 더 잘되게 해주고, 누구든지 더 힘을 북돋우워 주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잘 모이는 것을 질투하면, 내가 더 쪼그라듭니다. 남이 잘되면 결국 나도 잘됩니다. 우리는 남도 아니고 형제자매 아닙니까?


정약용을 시기하여 유배 보낸 이들을 기억합니까? 주님을 시기하여 마귀의 힘을 빌렸다던 이들이 생각나십니까? 그들은 그저 욕을 먹을 뿐입니다.


진실과 선과 아름다움과 거룩함만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