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3 연중 제11주간 토요일(마태 6, 24-34)

 

찬미 예수님!

 

어떤 신부님이 바쁜 일이 있어서 차를 급하게 몰았습니다.

"호르륵!"

'아뿔싸! 교통경찰이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을 줄이야.

속도를 위반하셨습니다.”

제가 좀 바빠서 그랬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신부님이 대답했다.

"아니 , 신부님이시네요."

그 경찰관도 신자였던 것이다.

경찰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경찰관은 신부님께 고해소에서나 들을 수 있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신부님, 보속으로 묵주기도 다섯 단 하세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지금의 세상은 자본주의가 승리한 세상입니다. 신자유주의, 신자본주의라고도 부르는 현재의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를 대변했던 소련과 미국의 냉전 상태를 깨고서 자본주의를 거의 모든 나라가 받아들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자본주의라는 것은 자본, 즉 돈의 힘이 모든 다른 가치와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놀라운 세상입니다. 사실 화폐의 힘이 발휘된 것은 중세의 권력과 신분제를 무너뜨리는 신흥자본가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시작은 기존의 권력과 신분제를 넘어서는 진보적인 가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돈의 힘이 온 세상을 아우르는 절대반지의 힘 같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느님이냐 맘몬이냐? 즉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하고 묻는 것이 참 싱겁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세상은 경제, 즉 돈의 힘 앞에 다른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무소유를 지향하는 우리 수도생활도 공동의 재화는 얼마나 많습니까? 개개인의 수도자는 가난하지만 수도회 자체는 부자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이냐 재물이냐의 양자택일 식 말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재물의 올바른 활용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하고, 하느님적인 가치 추구를 이야기해야 조금 먹힐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 수도자들은 하느님에 대해서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하느님적인 가치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함을 진정 깨달아야 합니다. 좋은 집, 멋진 차, 그리고 많은 재산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가치. 진실과 선함과 아름다움과 거룩함이라는 것을. 아주 소소하지만 인간을 진정으로 살아있게 하는 친절과 배려와 미소와 따스함이라는 것을 우리는 전해 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질투와 시기와 모함 등의 어둠의 농간은 정말로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임을 또한 분별하여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수련을 받을 때, 헝그리 수녀님들이라고 우리가 불렀던 예수회 작은 자매회 수녀님들이 생각납니다. 청바지 소재로 된 옷을 즐겨 입는 수녀님들이었는데, 가끔 수련소에 와서 미사를 함께하곤 했습니다. 이분들은 가난을 참 철저하게 사는 분들이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분들도 있었는데 학교에서 근무하고 유치원에도 계시다고 해서 아 선생님을 하시는구나했더니 그분들의 직업은 학교 청소부, 유치원 주방 보조 이런 것이었습니다.

공동체 규칙이 좋은 직업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연말이 되면 공동체의 모든 재산을 0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참 놀라울 뿐입니다.

 

정말로 하느님께 맡기고 산다는 것. 초기의 사막 교부들. 가톨릭 수도생활의 시초가 된 그분들은 목숨까지 그분께 맡기고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선배 순교자들도 저 영원한 세상을 위해 초개와 같이 재산과 명예를 버렸습니다. 저는 한참 멀었습니다. 아직도 재물을 잘 활용하면 하느님께 더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떨치겠습니다. 아직은 하느님적인 가치를 재물을 이용하여 더 일굴 수 있다는 일리를 못 잊겠습니다. 우선 순위의 문제로 보는 관점을 포기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분이 제 안에 전부로 자리한다면, 재물도 명예도 심지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오직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자 의로움이 될 날이 올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소소한 이유로 형제자매들에게 상처주지 마십시오. 정말로 후회하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 허비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