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8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요한 19,31-37

 

찬미 예수님!

 

신부와 조폭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1. 검은색 계통의 옷을 주로 입는다.

2. 두목이 있어 상명하복의 문화하며 시킨 대로 안 하면 응징이 있다.

3. 나와바리(관할구역)가 철저하다.

4. 서열이 확실하며 대게 아무나 보고 반말한다.

5. 밥을 얻어먹고도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다. 밥 먹고 대게 돈을 안 낸다.

6. 사람들이 돈을 갖다 주면서도 감사하다고 한다.

7. 어울려 다니며 무서운 게 없다. 경찰도 검찰도 무시한다.

8. 조직에 들어갈 땐 충성을 맹세한다.

9. 가끔 기도를 보며 근무 중에도 술을 마신다.

10. 행동에 무게감이 있다.

11.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어렵다.

12. 그들만의 세계가 따로 있다.

13. 조직에 한번 들어가면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

14. 확실히 믿는 것이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친다.

15. 가족보다 형제를 우선시 한다.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며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예수성심 대축일은 성체성혈 대축일 다음 주의 금요일에 지켜집니다. 예수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기에 와서, 이전에 소수의 신비주의자나 성인들에 국한되던 것에 비해 상당히 일반화되어 성 요한 에우데스(St. John Eudes)는 예수성심 신심과 그 축일 제정의 신학적이고 전례인 기초를 확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16731227, 프랑스 방문회 수녀였던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St. Margaret Mary Alacoque, 16471690)에게 예수께서 발현하시어 성심 공경과 성심이 공적으로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이후 1765년 교황 글레멘스 13세는 폴란드 주교단의 청원을 받아들여 제한된 지역에서 예수성심 공경 지향의 미사와 기도문을 바칠 것을 허용하였고, 또 예수 성심을 공경할 것을 지시하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제정하였습니다. 1928년 교황 비오 11세는 이 축일을 8부 축일(이것은 1960년에 폐지됨)로 하고 회칙 <극히 자비로운 구원자>를 통하여 예수성심 축일을 위한 기도문과 취지를 규정하고 세계를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예절을 매년 그리스도 왕 축일에 경신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한편 축일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1956년 비오 12세는 예수 성심 공경에 관한 회칙을 발표하여 예수성심 공경을 더욱 구체화하였습니다. 1969년 이래로 대축일로 지켜지고 있는데 그 날짜가 성체성혈 대축일 다음 주 금요일로 지정된 것은 예수성심이 성체성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로마 병사의 창에 옆구리를 찔려 피와 물을 흘리십니다.

 

이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어 가장 극악한 형벌 중 하나인 십자가형에 처해져서 죽으십니다. 그리고 그 시체마저 로마 병사의 확인에 의하여 훼손됩니다. 우리 동양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체를 훼손하는 것은 무척이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행동입니다. 당시 로마 관습에는 다리를 부러뜨려 죽음을 확인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다행이 예수님은 다리를 부러뜨리는 더한 모욕을 당하진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서 피와 물을 쏟으십니다.

 

죽어서까지 모욕을 당하시고, 그 모욕은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절절한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배우라고 교회는 오늘을 사제 성화의 날로 지정한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5년부터 예수 성심 대축일에 매년 전세계의 모든 교구에서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도록 권고하셨습니다. 또한 교황청 성직자성에서는 교황님의 지향에 따라 이날을 거룩히 지내기 위하여 아래의 목적을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 모든 사제들이 자신의 신원과 사명에 합당한

성덕의 중요성을 재발견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이 날을 지낸다.

둘째 : 교구 공동체 전체가 사제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와 희생을 봉헌하며 이 날을 지낸다.

 

는 것이 교회의 공식 선언이며, 가르침입니다.

 

요즘 들어 점점 직무 사제직의 권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우려가 됩니다.

 

기쁘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앞서 신부와 조폭의 공통점에서도 느끼셨겠지만, 사제들의 권의주의 특히 한국에서의 권위주의는 참 심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권위가 떨어진다는 말은 잘못된 권위주의를 비판하고, 바로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수도자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전 수도자 신학을 공부한 선배 수사님의 말을 빌려 저는 라고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신자들보다 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더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고 정의했지요.

 

사제들의 정체성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수도자들보다 더 예수님의 직제자로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권위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참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다른 의미이기도 하지요. 권위라는 것은 사실 스스로 내세우면 권위주의라는 부정적 의미가 됩니다. 권위라는 것은 다른 이들이 인정해 주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정체성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참 우려스러운 것이지요.

 

저는 누가 질문 중에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참 난감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수도자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제라고 대답해야 할 때가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제 사제직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업이란 먹고 사는 일이지만, 제가 사제직으로 불림 받은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존재가 축성을 받고, 제가 응답하는 봉헌을 한 것을 직업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에 그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기도 하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한번 곱씹어 보기도 합니다.

 

전에 소개해 드렸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서품을 받은 해에 추천 신부님을 찾아뵈었다가 김옥균 주교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추천 신부님은 아들 신부라고 저를 소개하면서, 덕담을 부탁했습니다. 그때 김옥균 주교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지요. “보통 신부되시게.” 당시에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고, 아니 성인 신부도 아니고 보통 신부라니 하면 의아해 했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참 깊다는 것을 느낍니다.

 

보통 신부. 우리가 상식적으로 신부라면 사제직을 가진 이라면 해야 할 그리고 살아내야 할 그 정도. 그것조차 참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비슷한 조언을 우리 수사회 일번 수사님인 도마 수사님께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서품을 받았을 때, 수사님은 저에게 요한, 다른 것은 부탁 안하는 데 한 가지만 할께. 제발 상식적으로만 살아 주시게.”

 

이 말씀의 깊은 의미도 요즘 새록새록 느낍니다.

 

보통 신부로, 상식적으로 사는 것. 이제 사실 저의 목표입니다. 면형무아의 근처도 가지 못하고, 언감생심 면형사제는 꿈도 못 꾸지만, 보통 신부로 상식적으로 사는 것이 제 지향입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다행히 수도원의 틀 안에서, 형제들의 도움 아래서 살지만 사제직은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가끔 소소한 일에도 화가 나는 미숙한 나를 보면서, 거부 당하고, 무시 당했다는 감정이 일어날 때면, 어둠이 집요하게 찾아옴을 느낍니다. 저 개인을 볼 때면 참 보잘 것 없지만, 사제의 직분은 참 중요한 부분이 있지요. 그 직분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 어린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잘못하거나 이건 아니라고 느끼시는 부분에 있어서는 따끔하게 충고도 부탁드립니다. 그것이 저도 또 많은 사제들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니까요.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