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31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루카 1, 39-56)

 

찬미 예수님!

 

가브리엘 천사의 수태고지에 성모님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답하십니다. 이 대답에서 구원이 역사는 시작됩니다. 성모님이 Fiat. 이루어지소서. 라는 말을 뱉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온 피조물이 기쁨에 겨워 노래하고 춤을 춰야하는 엄청난 구원의 축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미약하고 미천한 유다의 한 어린 처녀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것인지를 받아들이는 그 장면은 그래서 인류 구원의 시작이라고 많은 교부들이, 또 성인들이 칭송하는 장면인 것입니다. 두 사람이 약혼하면 일 년 이상 떨어져 살아서, 임신여부를 체크하고 간음을 철저히 방지하는 이스라엘의 당시 풍습에서 처녀가 임신을 하였다는 것은 간음이 드러나는, 돌로 쳐 죽을 중죄임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이는 참으로 용기 있는 결단이며, 인류 구원이 시작이지만 현실적으로 본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겠습니까? 인간적이고 생물학적인 부부관계를 넘어서서 성령으로 잉태한 이 일을 받아들인 이는 오직 남편인 요셉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아이를 수태한 어린 마리아의 불안과 두려움을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저는 추측합니다. 엘리사벳은 이미 늙어서 생물학적으로는 결코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수태를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같은 성령의 작용을 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또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는 이 엄청난 비밀과 신비를 터놓고 이야기해 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우스개 소리로 여자들은 친구를 만나서 5시간 동안 수다를 떨다가 헤어지면서 못 다한 이야기는 집에 가서 통화하자.’ 이렇게 작별인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모님은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마니피캇, 라틴어로 찬미하라라는 동사인 성모님의 노래를 오늘 복음에서 노래하십니다.

성모님의 노래는 가톨릭 성무일도의 저녁기도에 포함되어 매일 노래되고 있으며, 동방에서는 아침기도에서 매일 부를 정도로 너무나 유명하고 아름다우며 그 의미가 가슴을 저미는 노래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그렇습니다. 천사의 전언에 답하는 순간, Fiat의 순간 하느님이 성모님 안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거룩함과 기쁨 자체이신 분을 성모님은 모시게 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당신 보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이스라엘의 나자렛이라는 촌마을의 어린 소녀에게 하느님이 오셨습니다. 황궁의 공주에게 와도 몸 둘 바를 모를 일 일진데 이 얼마나 큰 은총이며 감격입니까?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적확한 말입니까? 이 노래가 불러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성모님은 언제나 찬송 받으십니다.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공경과 흠모를 받으시며 인간을 위한 전구자가 되어 주시고, 그 누구보다 따스한 분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시고, 매일의 기도에 이 노래가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거룩함의 원천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시고, 그분의 본성은 자비입니다. 그러니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축복을 주심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교만과 권위주의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지름길이고, 멀어져 있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겸손하시고 자비로우시니 그분을 닮지 않는 이는 그분과 대척하는 어둠의 영향권에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그분의 자비는 비천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더 확실하게 미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절실하고 확실하게 주님을 부르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자들은 자신들의 부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집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사랑이신 분의 자비가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과 그 믿음을 따르는 후손들에게 영원히 미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영원이라는 신적인 용어 앞에서 우리는 이 노래가 성모님이 성령 안에서 부른 것이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쁨과 찬미의 노래를 부른 후, 성모님은 엘리사벳과 석 달 가량 깊은 대화와 위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십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의 전언이 주는 깊은 신비와 두려움을 나눌 엘리사벳 같은 도반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사족으로 부쳐 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