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5 연중 제 7주간 금요일(마르 10,1-12)

 

찬미 예수님!

 

하느님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뭐라고 하는 지 아십니까?

신내림이라고 합니다.

그럼 스님도 따라 내리면? 중도하차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과일은? 천도복숭아라고 합니다.

그럼 제일 비싼 새는? 백조.

손가락을 영어로 핑거라고 하지요. 그럼 주먹은 뭐라고 할까요? 오므린 거 .

신부님이 성당에서 하는 일은 뭐라고 하는 지 아십니까? 미사일이랍니다.

그럼 바람이 귀엽게 부는 도시는? 분당

 

子曰 ,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자왈 ,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줄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안다는 것이다.” 이 구문 특히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라는 구절은 제비도 논어를 말할 줄 안다고 우스개소리로 회자되는 구절입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라는 말은 오늘 독서인 야고보서의 여러분은 할 것은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십시오.”라는 구문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공자님의 말씀이 분별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 것이라면, 야고보서의 이 말씀은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자세를 말합니다. 이 문맥의 바로 앞에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을 두고도, 그 밖의 무엇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라는 말과 마지막의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지평은 다른 이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시간적으로는 천지창조 이전부터 존재한 하느님을 믿으며, 영원을 약속한 하느님의 구원을 믿습니다. 공간적으로도 보편된 가톨릭 교회는 나라와 인종과 문화를 넘어서서 일치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무엇보다도 특별한 것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안에서, 내적으로는 마음의 역동과 변화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묵상하고 식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공동체와 규율을 준수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공동체와 규율이 주는 갑갑함과 팍팍함을 넘어서는 선에 대한 공동의 지향과 에너지가 나를 지탱해 줌을, 그리고 그 거룩한 태도 안에 스며있는 성령의 숨결을 믿기에 그러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고 수도 공동체인 것이지요.

 

내가 주님께 눈길을 두고, 내가 주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옷깃을 부여잡으려 노력한다면, 내 부족함과 약함과 내 탐욕과 게으름의 굴레 안에서도 그분의 자비가 스며들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그러합니다.

 

우리의 분별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다른 점이고 소중한 점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 안에서 할 것은 무엇이고, “아니오.” 할 것은 무엇인지 한번 묵상해 보신다면 참 복된 하루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 할 것은 .”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