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9 부활 제 7주간 토요일(요한 21, 20-25)

 

찬미 예수님!

 

술 취한 사람이 명동에서 택시를 탔는데

명동으로 갑시다.” 하자 기사가 당황하여

"여기가 바로 명동인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취객은 만원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아요. 하지만 다음번에는 이렇게 빨리 운전하시면 안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의 앞날을 묻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아마도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 요한의 앞날이 궁금했나봅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어떤 특혜가 있을까? 궁금했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내가 올 때, 즉 재림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질책하십니다. 너의 할 일은 이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라.”

 

어제 복음에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고, 세 번이나 양들을 돌보아라. 하고 말씀하신 후 마지막에 하신 말씀도 이것입니다. “나를 따라라.”

 

많은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얻는 이득과 혜택을 이야기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팻말을 들고 다니는 개신교 신자들의 전교 모습은 많은 이들의 낯을 찌푸리게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분을 따르는 것이 주는 혜택이나 믿지 않았을 때의 벌을 강조하는 모양새에 대한 불편함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랑이 주는 이득이나 혜택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는 순간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그분을 따르는 길은 그분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사랑의 길에 이득이나 혜택을 염두에 두는 것은 사랑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득이나 혜택을 염두에 두고 그분의 제자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러하기에 그분을 따르고 그분의 가르침 안에서 더 큰 자유와 충만함을 맛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선택하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신이신 그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벅찬 사랑이 오늘도 우리에게 그분을 묵상하고 따라오라 손짓합니다.

 

나를 따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