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8 부활 제 7주간 금요일(요한 21, 15-19)


찬미 예수님!

 

경상도 아버지와 아들이 오랜만에 레스토랑에 가서

주문을 했습니다.

웨이터 : 뭐 드시겠습니까?

아버지 : 쓰떼이끼 둘이요.

웨이터 : 그럼 고기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아버지 : (잠시 망설이다가) , 최선을 다해 주이소!

 

조선 시대에 선비들은 무엇을 권유할 때 두 번까지만 권유했다고 합니다. 부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번까지는 거절할 수 있지만 만약에 세 번째 거절하면 그것은 절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두 번까지만 얘기를 하고 세 번째는 웬만하면 말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래도 세 번째 부탁을 한다면 그것은 꼭 들어주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세 번째도 그것을 거절한다면 그 사람을 다시는 안볼 생각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서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그중 하나는 베드로의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 한 것을 다시 복구해 주시기 위함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그만큼 베드로의 직무와 위치를 상기시켜주는 의미라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예수님의 사후, 제자단을 이끌며 초대 교황이 됩니다. 또한 교회의 대표자로서 바오로와 더불어 초기 그리스도교를 자리매김한 인물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보다 예수님이 매 질문과 대답마다 덧붙이시는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라는 말씀에 집중해 봅니다. 이 말씀에 제자도의 의미가 짙게 배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의무와 당위성이 드러나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의 어린양을 돌보라는 말씀을 무려 세 번이나 하십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 정도는 거부할 수 있지만 세 번이나 하신 말씀은 꼭 명심하고 따라야합니다. 세 번이나 말씀하신 것을 거부한다면 우리 문화권에서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