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고해성사를 드리다보면 같은 죄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반복하는 제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 그들도 마찬가지라고 저에게 대답하곤 합니다. 왜 우리는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우리 모두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나약한 존재이니 매일 똑같은 죄를 반복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것은 헤어 나오고 싶지 않은 유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무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죄를 다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죄를 다 용서하여 주신다는 이유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같은 죄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모든 것을 용서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성령께서 늘 함께 머무시는 예수님께 이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진실을 거짓이라고 말하고 거짓을 진실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은 이 율법학자들과 다르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말 제 자신이 그들과 다른지 깊이 성찰해봅니다. 묵상 중에 저는 통회하지 않고 같은 죄를 습관처럼 반복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계적으로 고해성사를 보면서 하느님께서는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며 자만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통회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제가 판단하고 싶은 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오리게네스는 확실하게 은총에서 등을 돌릴 때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은총에서 등을 돌리는 행위가 무엇이겠습니까? 은총에서 등을 돌리는 행위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거부하고, 성령의 부르심을 거부하는 행위가 곧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죄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나약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며, 우리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시는 성령을 거부하는 일이 됩니다. 우리가 같은 죄를 반복하며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쉽게 판단하고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기를 거부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창설 신부님의 말씀을 따라 통회, 정개, 보속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창설 신부님께서는 통회, 정개, 보속하는 연습을 자주 하면, 나중에는 하느님의 뜻만 맞추어 드리는 데 열중하게 되고, 이때부터는 성령이 내 마음에 와서 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